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 - 기억과 고통을 응시하는 눈

  한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인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는 1980년 5월 광주 민주화 운동을 배경으로, 국가폭력의 참혹함과 그 속에서 인간의 존엄을 지켜내려는 이들의 이야기를 섬세하고도 처절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이 소설은 단순히 과거의 비극을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상처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지를 조명한다.

소설은 1980년 5월 18일, 광주에서 벌어진 민주화 운동과 그 이후를 배경으로 한다. 중심인물은 열다섯 살 소년 ‘동호’이다. 동호는 친구 ‘정대’를 찾기 위해 도청에 남고, 그곳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폭력의 현장을 마주하게 된다. 이후 그는 계엄군에게 붙잡혀 무참히 희생된다.

하지만 이 소설은 동호의 죽음 이후부터가 진짜 이야기의 시작이다. 동호와 관련된 주변 인물들이 각 장마다 화자가 되어 자신이 목격한 것, 겪은 것, 숨겨야 했던 것들을 독자에게 고백한다. 동호의 선생님, 인쇄소 여직원, 노동운동가, 출판사 편집자, 정신병원에 갇힌 여성 등은 각자의 방식으로 동호를 기억하며, 동시에 자신의 죄책감과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이처럼 다층적 시점을 통해 작가는 집단의 기억과 개인의 고통을 유기적으로 엮어낸다.

한강 작가는 『소년이 온다』에서 기존의 사실주의 문학과는 다른, 시적인 문체와 은유적인 서술로 독자의 감정을 자극한다. 직접적인 묘사 대신, 절제된 언어로 폭력의 잔혹함을 그려내면서도 그 이면의 슬픔과 절망, 그리고 인간 존엄성에 대한 믿음을 드러낸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죽은 동호의 시점에서 서술되는 1장이다. ‘죽음 이후’의 시점은 이 소설이 단순한 역사 재현이 아니라, 기억과 망각 사이에서 벌어지는 윤리적 고찰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국가에 의해 학살된 소년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은 더없이 냉혹하고 잔인하지만, 동시에 간절히 살고 싶었던 이들의 인간적인 목소리도 담고 있다.

『소년이 온다』는 단순한 역사소설이 아니다. 이 책은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에 의해 왜곡되고 잊히는 진실에 대한 문학적 저항이다.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소년이 온다>>는 압도적인 고통으로 쓴 작품“이라는 말을 했다. 그래서일까? 이 책은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그 고통을 정면으로 응시함으로써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책임감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 소설은 청소년과 성인 모두에게 추천할 만한 현대 한국 문학 작품이다. 학생들에게는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사건을 문학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성인 독자들에게는 사회적 연대와 책임에 대한 깊은 고민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한강의 『소년이 온다』는 한 편의 소설을 넘어, 한 시대의 고통과 기억을 담은 기억의 문학이다. 소년의 죽음을 통해 우리는 수많은 이름 없는 이들의 죽음을 마주하게 되고, 그 죽음이 던지는 질문에 응답해야만 한다. 고통스러운 진실이지만, 외면하지 말아야 할 진실이다.

문장의 길이는 짧고 사실적이며 감정은 배제됐다. 그러나 묘사는 짙고 감정의 여운은 깊다. 삶과 사람이 뒤엉킨 실타래 풀기가 결코 단순하지 않은 것처럼 그녀의 글은 과잉된 감정의 폭발은 없지만 읽다 보면 이곳저곳에서 감정의 응어리가 생겨 잘 풀어지지 않는다. 작가의 힘이다.

읽는 동안 마음이 무너졌고, 다 읽고 나서는 침묵에 빠졌다. 누군가는 묻고, 누군가는 써야 하며, 독자는 읽어야 하는 작품이다.

소년은 결국 동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