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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숙의 몸과 인문학(고미숙)

달빛마리 2021. 1. 12.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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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숙의 몸과 인문학/고미숙/북드라망

 

이 책은 고미숙 선생님의 <동의보감> 3종 세트 중 마지막 책이다. <나의 운명 사용 설명서>를 먼저 읽었어야 했는데 다 읽고 나니 순서를 어긴 것 같아 아쉽다. 

 

내가 지금까지 읽었던 선생님 책들 중 가장 센 어조로 사회 전반에 걸친 요란한 현상들을 비판 혹은 풍자하신다. '스마트 폰'과 '스투피드'한 일상, 현대 의학의 처방은 수술 아니면 약물 치료, 장기 제거 아님 세균 박멸이 끝, 성형 중독, 동안 열풍과 멘탈 붕괴 등 1장의 소제목만 훑어도 선생님의 냉기 어린 시선이 느껴진다. 

 

무엇보다 인간의 질병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선생님의 통찰이 '보왕삼매론'의 첫 글귀 '몸에 병이 없기를 바라지 말라'와 일치해서 신기했다. 건강은 정상적인 것이고, 아프다는 건 비정상적인 상태라 여기는 것은 어디까지나 현대의학과 자본의 기준일 뿐, 오히려 질병은 생명의 능동적 전략이라고 하셨다. 아픔을 통해서만이 삶의 새로운 질서가 창조되기 때문이다. 

 

<동의보감>은 자연과 생명은 오직 '순환과 운동'이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고미숙 선생님이 어느 날 <동의보감>과 인연을 맺으셨듯이 나도 '자기 몸의 탐구자'가 되고 싶다. 아는 만큼 자유롭고 아는 만큼 살아낸다는 말씀이 크게 와 닿아서다. 

3장 '몸과 사랑'편은 개인적으로 대한민국의 수많은 청춘들이 꼭 읽었으면 하는 장이다. 사랑이라는 명목 아래 서로를 구속하거나 집착하고 소위 누가 먼저 찼는지가 중요해 밀당을 즐기고 실연을 죄악처럼 여기는 사랑놀이 대신, 이 책에 소개된 '사랑법'을 알려 주고 싶다. 

사랑이란 타인의 욕망에 갇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홀로 설 수 있는 자만이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는 것.
그러니 누구든 '사랑의 화신'이 되기를 원한다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는 않는 바람처럼! 
p.96

4장 '몸과 가족'을 읽을 땐 지난주에 읽었던 <엄마의 20년>이 떠올랐다. 여성들의 욕망이 여전히 가족이라는 낡은 울타리 안에서만 맴돌고 있음을 한탄하셨다. 가족 혹은 모성이라는 프레임을 벗어나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보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교육 혁명가 이반 일리히(Ivan Illich)도 일찍이 현대의 주부 노동(커리어 우먼도 다르지 않다)을 "남편의 임금노동에 가리어진 그림자 노동"이라고 명명한 바 있다고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지금까지 쌓아왔던 생각의 틀이 완전히 벗겨지는 순간을 경험했다. '바보야, 문제는 어린 시절의 상처가 아니라니까!'라는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 

 

수많은 육아서와 심리학 책에서 흔히 한 번쯤은 다루었던 '유년시절의 상처', 모든 상처의 원천은 유년 기고 결국 문제는 가족이라는 프레임.. 선생님의 말씀을 그대로 옮기자면,

성인이 된다는 건 핏줄의 장막을 벗어나 세계를 직접 대면한다는 뜻이고, 그 과정에서 가족 삼각형과는 전혀 다른 관계 속으로 들어간다는 뜻이다. 친구를 만나고, 선배를 만나고, 스승을 만나고, 혹은 영웅과 라이벌을 만나고 또 은인과 원수를 만나고..... 그런데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어린 시절의 상처가 삶을 지배한다면 그건 그 사이에 전혀 새로운 관계 속으로 들어가지 않았다는 뜻이 된다.

p.104

또한 허훈의 <마음은 몸으로 말한다>의 글까지 인용하셨다. 

"보통의 심리치료는 어린 시절의 해결되지 않은 감정들을 다시 확인하고 치유하며 통합하는 작업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이 경우 자신은 사랑스러운 존재라는 확신을 얻게 되지만, 반면에 부정적인 감정이나 고통을 유발한 책임을 부모나 주위 사람에게서 찾았기 때문은 자신은 희생자라는 감정에 사로잡히기 쉽다."

허훈, <마음은 몸으로 말한다>, 이담북스, 2010p.83

그리고 무엇보다 다음에 전할 선생님의 말씀이 통쾌하게 다가왔다. 

어떤 비극도 시간이 지나면 전후좌우 맥락이 파악되는 법이다. 그걸 깨달으면서 어른이 되어 가는 것 아닌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건 내가 그 기억을 계속 '동일한' 방식으로 곱씹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면 이미 그 기억은 원래의 사건과는 무관한 나만의 '자의식'이 되어 버린다. 자의식이 공고해질수록 외부와의 소통은 불가능해진다. 그래서 아주 역설적이게도 소위 상처 받은 이들일수록 그걸 빌미로 타인에게 마구 상처를 입히기도 한다. 그 대상 또한 엄마(혹은 가장 가까운 가족)인 경우가 많다. 원인제공도 "엄마"요, 한풀이 대상도 "엄마"인 것. 뭔가 좀 이상하지 않은가. 모성이 무슨 동네북도 아니고, 이렇게 툭하면 호출 대상이 되다니 말이다. 
p.114

과거의 기억을 '동일한 방식'으로 곱씹는 것에서 벗어나 '왜곡'까지 함으로써 스스로를 희생자 혹은 피해자라는 굴레에 집어넣은 후 그 세상에서만 존재하는 사람을 알고 있다. 안타깝지만 '불통' 그 자체다. 마음은 유년기에 머물러 있고 몸만 성인으로 자라 그 간극이 멀어지니 말과 행동이 미성숙하다. '유년기의 상처'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삶을 살면 좋으련만.. 

요즘 읽고 있는 데이비드 브룩스의 <두번째 산>에 적혔던 글귀들이 문득 떠오른다. ‘영원히 치유되지 않는 슬픔을 끌어안고 사는 노인을 주변에서 흔히 본다. 이들은 마땅히 받아야 할 존중을 받지 못한 채,오래전 자신에게 일어난 어떤 잘못된 일을 놓고 끊이없이 화를 내면서 살아간다’

 

읽고 깨닫고 사유하고 실천하고 풍요롭게 존재하는 삶이 얼마나 행복한지 그 아이도 알게 되면 좋으련만...

 

동의보감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고미숙 선생님의 <몸과 인문학>은 사회비평 에세이로 분류되어 쓴소리가 많다. 그러나 동시에 시원하고 통쾌하다. 무엇보다 같은 현상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준 감사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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