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 옮기는 생각

딸에게 쓰는 편지

달빛마리 2021. 10. 7.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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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아야
비아 눈에는 엄마가 완벽해 보이지만 사실 엄마는 어설프고 서투른 완벽주의를 흉내 내는 사람일 뿐이야
비아가 조금 더 크면 자연스럽게 알아채겠지만 말이야..
비아가 나중에 커서 그 사실을 알게되면 기분이 어떨까?
실망하지 않기를 바랄뿐이야.

몸에 안 좋다고 과자도 빵도 잘 안사주는 엄마가 사실은 얼마나 과자를 좋아하는지.. 이미 눈치챘지?
어제 비아 친구가 선물한 오레오를 엄마가 먹었잖아.
다시 사주겠다고 약속을 하고 말이야.

저녁먹고 아빠가 설거지하실 때 귀찮을 법도 한데 엄마가 굳이 오레오 사러 나가겠다고 했던 거 기억해?
엄마는 너에게 줄 오레오와 엄마가 나중에 혼자 먹을 오레오를 사러 갔었어 ^^;
너에게는 플레인을 사주고 엄마는 초콜릿 크림을 샀지.
다행히 너에게 안 들키고 엄마 오레오는 화장대에 잘 숨겼어 ㅋㅋ
그리고 지금 커피를 내려 마시면서 순식간에 두 봉지를 모두 먹었단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 행복한지..
40대 중반이 되면 과자도 빵도 맛이 없을 줄 알았는데 아닌가 봐..
엄마의 입맛을 닮았지만 아빠의 체질을 닮아 날씬한 비아지만 엄마처럼 과자나 빵을 덜 먹었으면 좋겠어.
평일에는 안 먹고 주말에만 먹지만 그 조금도 건강에는 좋지 않으니까 (그 성분을 아니까) 사실 엄마는 맘이 불편해.

아침에 걸어서 비아를 학교까지 바래다주고 돌아올 때는 일부러 다른 길로 걸어 집으로 돌아왔어. 뭔가 평화로운 시간을 즐기고 싶은데 아이들이 바글바글한 육교로 가기가 싫더라고.. 그냥 사람들이 없는 한적한 길로 걷고 싶었어.

엄마가 구독한 팟 캐스트를 들으면서 새로 생긴 상점들을 관찰했어. 동네에 카페가 그렇게 많은데 또 카페들이 생겼더라고. 엄마처럼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은가 봐. 돌아오면서 꽃을 좀 사고 싶었는데 아직 문을 안 열어서 아쉬웠어..

엄마가 전에 한 말 기억하지? 나중에 독립해서 엄마 아빠 집에 올 때 혹은 특별한 날 무슨 선물을 살까 고민할 필요 없다고 ^^ 엄마는 꽃, 커피, 책이면 언제나 충분하다고 말이야. 그랬더니 비아가 그럼 아빠는 어떻게 하냐고, 그건 공동 선물이 아니라고 했던 말이 기억나네.

엄마는 요즘 아빠에게 많이 고마워.
감성적이지만 현실적인 아빠.. 아빠가 언젠가 그러시더라. 질서정연해 보이지만 충동적인 엄마 때문에 아빠가 항상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야 한다고 ^^ 엄마가 아주 오랜만에 아빠가 하는 말에 크게 웃었어. 재미없는 농담만 건네는 아빠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한 말이 엄마를 웃게 만들더라고..

엄마가 한 달 전쯤 일기에 이런 말을 적었어.
What is the most valuable thing that you've learned in the last weekend?

이 질문에 엄마의 대답은 '사랑'이었어.
유난히 사랑 표현에 서투른 엄마가 그때부터 아빠에게 노력을 좀 하고 있는데.. 아빠가 눈치채고 있는지는 모르겠어.
그나저나 우리 비아한테는 더 노력을 해야 할 것 같아.

정리 정돈 습관을 길러주기 위한 명목으로 잔소리가 줄지를 않네
양치할 때 돌아다니지 않기
놀고 나서는 정리하기
학교 다녀와서 옷 잘 정리하기
엄마는 매일 똑같은 잔소리, 비아는 청개구리처럼 대답마다 '아니오~'하면서 치우기 시작하지..

오늘은 비아가 학교에 가기 전에 엄마가 집안일을 거의 다 끝냈기 때문에 집에 돌아와서는 바로 책을 읽을 수 있었어.
매일 원서를 낭독한 지 56일째, 그래서 그럴까? 엄마는 쉽게 그리고 자주 배가 고파 ^^

요즘 엄마가 읽는 Pachinko는 나중에 비아가 커서 읽어도 좋을 만큼 훌륭한 작품인 것 같아. 역사를 기반으로 한 소설이라 더욱 흥미로워.

내일 수학 시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 친구들이랑 놀이터에서 많이 많이 놀 거라고 굳게 다짐하며 학교에 갔는데 안타깝게도 비가 오기 시작하네. 비아는 아쉽지만 엄마는 다행이다 싶어. 학원도 안 다니는데 시험 하루 전에는 책을 좀 봐야 하지 않을까?

속상해할 너를 키위와 방울토마토로 달래줘야겠다 ^^ 학교 끝나고 집에 돌아와서 간식 먹으며 책 읽는 시간을 사랑하는 우리 딸램, 매일 책에 푹 빠져있는 네가 참 자랑스러워.

비아, 집 앞 도서관에서

다른 건 몰라도 책 읽는 즐거움이 무엇인지 알고 책 읽는 습관이 몸에 배도록 노력한 시간들이 빛을 발하는 것 같아 사실 엄마는 많이 기뻐.

엄마가 오후에 잠깐 일할 때 비아가 공부해야 할 범위를 찾아 미리 문제를 출력해 놔야겠어.
이제 한 시간 후면 비아를 데리러 갈 시간이다!
오늘도 학교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길 바라며 엄마는 이만 총총!

비아가 만들어 준 책갈피 :)

p.s     선물이라며 엄마 책갈피 만들어 줘서 감동했어!
        고마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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