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 옮기는 생각

풍요롭고 행복한 시간 :)

달빛마리 2024. 4. 13.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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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에 적힌 Monday, April 8의 일기를 그대로 옮겨 본다. 
 
월요일 아침,
주말에 어디로 멀리 가거나 대단한 일을 하지 않았는데도 충만한 시간들을 보냈다는 생각에 한주의 시작이 풍요롭고 행복하다. 
 
토요일
책을 한 권 읽었고 (이기주의 '보통의 언어')
욕실 청소를 하고, 세탁기를 돌리고, 레오씨와 <혼젠>에서 웃음 좋은 청년이 정성스럽게 차려주는 깔끔하고 담백한 일본 가정식 식사를 마치고,  근처 커피 가게에(평일 점심 때는 회사원들로 가득 차거나 줄이 길어 엄두도 못 냈던) 들려 그 집의 시그니처 커피를 사서 나눠 마시며 평일에 늘 혼자 걷던 길을 함께 걸었다. 
장소도 중요하지만 함께하는 사람이 누군지가 더 중요하다는 그 뻔한 얘기가 마음에 와닿았던 순간이었다.
 

아파트 주변 벚꽃 나무 하나하나를 톺아보며 굳이 멀리 벚꽃 구경을 갈 필요가 없음을 우리 둘은 서로의 눈빛으로 확인했다. 벚꽃 명소로 구경을 떠난 친구가 대기질은 안 좋고 사람도 많고 덥다며 보내온 문자를 보고 다시 한번 우리의 선택이 나쁘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벚꽃나무 아래에서 두 팔을 활짝 벌리고 행복해하는 사진 속 그를 보고 있으니 웃음이 난다. 내가 행복한 것도 좋지만 사랑하는 이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더 행복하다. 그 행복의 잔상이 오래 남는다. 
 
일요일
비아가 전부터 다시 가고 싶다고 했던 Ashley에서 점심을 먹고, 비아와 레오씨는 문구점을 거쳐 서점으로 향하고 난 단골 옷가게 들렸다. 하늘거리는 꽃무늬 패턴이 새겨진 리넨 셔츠를 하나 샀다. 색감을 약화시킨 수채화 느낌의 투명한 꽃들이 리넨 특유의 질감과 더해져 내 피부톤과 잘 어우러지는 듯했다. 구입한 옷으로 갈아입고 비아와 레오씨가 있는 서점으로 찾아가 쨘~하고 보여주었더니 비아는 새 옷이 엄마와 잘 어울려 원래 가지고 있던 옷을 입은 것처럼 아주 자연스럽다 말하고 레오씨는 정말 잘 어울린다며 눈빛에 하트를 담아 건넸다. 
 
집에 오는 길에 소문으로만 들었던 과일 가게에 꽃을 사기 위해 들렸다. 과일 가게에서 파는 봄꽃들..
종류도 다양하고 꽃집보다 훨씬 저렴하다. 집에 있는 freesia가 그  향과 빛을  잃어 가고 있었다. 이제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올봄은 더 이상 freesia를 만날 수 없기에 다른 꽃들을 뒤로하고 다시 freesia를 골랐다. 집에 돌아와  꽃병 두 개에 사이좋게 나눠 담아 하나는 식탁 위에 다른 하나는 서재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이 꽃향을 나만 맡기가 아쉬워 지난주부터 시커먼 중. 고등 남학생들 코 밑에 연신 꽃병을 들이밀었다. 
"어때? 향기 좋지?" 나의 반 강요에 마지못해 하는 대답인지는 모르겠으나 "네~"하는 짧은 대답뒤의 표정들이 나쁘진 않았다. 


읽을 책이 있고
내 손이 닿아야 할 일들이 있고
나가기만 하면 봄꽃 천지다.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아침에 레오씨가 내려 준 에티오피아 드립 커피의 향과 맛, 출근할 때마다 우리가 나누는 입 맞춤과 깊은 포옹은 일상 속에서 마주하게 될 자잘한 스트레스들의 예방 주사가 되어 준다.
 
그 사람이 벚꽃나무 아래에서 어린아이처럼 환히 웃었던 그런 순간들이 앞으로 더욱더 많아지면 좋겠다. 나의 내면에서 살고 있는 막무가내 고집불통 내면 아이가 주기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도 금세 사라질 거라는 사실을 아는지 레오씨는 그때마다 반응하지 않고 조용히 달래서 돌려보낸다. 그래서 더 고마운 존재…
 


단순한 스케치와 선명한 색감이 내게 '희망'을 안겨다 주어 미술관에서 구입한  자석 그림은 ‘오늘도 내일도 사랑해’ 이 말과 잘 어우러진다. 고마운 남편에게 출근할 때마다 전하는 내 마음이다. 
 
학교 상담에서 선생님은 ‘비아가 화목한 가정에서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아이의 모습 그대로’ 라고  전하셨다. ‘친구들을 배려하며 모두가 흐트러진 수업 분위기에서조차 선생님 말씀에 집중을 하는 모습에 고마운 마음까지 든다’고 하셨다. 선생님께서 가지고 계신 비아가 쓴 글에는 '엄마는 사랑을 주시고 아빠는 가르침을 주시며 우리 집은 화목하다'라고 적혀 있었다. 
 
모든 상황이 단면만 존재하지 않듯 매일매일 여전히 삶이 던져 준 숙제를 풀고 있다. 어느 순간 <삶이 내게 숙제를 내주는 이유>에 대해 생각했다. 삶이 내 계획대로, 내 예상대로 펼쳐지지 않는다는 것을 일깨워 주기 위함이라고 결론지었다. '네 마음을 평평하게 고르지 않으면 슬픔 속에서 기쁨을, 불행 속에서 피어나는 또 다른 기회를 만나지 못할 거야'라고 속삭이는 것이다. 
 
불행하고 불운한 삶을 살고 있다고 자처하면 주변까지 어둡게 물들여 결국은 혼자 남는다. 죽음을 앞둔 회환의 순간은 짙어질 수밖에 없다. 
 
난 이제 더 이상 열심히 살지 않기로 했다. 그렇다고 게으른 삶을 산다는 것은 아니다. 거절하는 법을 배우며  하루하루를 즐겁게, 그리고 충실(내 몸과 맘을 다 받쳐 성실히 하는 충실이 아니라 하루를 즐거운 순간으로 채우다 보면 어느새 결실을 맺게 되는 그런 충실)히 살아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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