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 옮기는 생각

조용히 눈 감으면

달빛마리 2021. 5. 27.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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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우리 집이 자리 잡은 위치에 감사한다. 의식적인 선택이었지만 스스로 내린 선택에 다시 안도한다. 집 정면으로는 도서관이 있고 우측은 수영장이 있다. 모두 걸어서 3분 내 거리다. 이쯤 되면 아스팔트 도시가 연상되겠지만 지역의 특성상 다행히 그렇지 않다. 수영장을 지나 다시 3분 정도 걸으면 제천 변이 펼쳐진다.

얕지만 또랑또랑한 목소리를 흉내내며 유유히 흘러가는 시냇물에는 작은 물고기들이 첨벙첨벙 춤을 춘다. 그 가운데 놓인 징검다리는 아직 엄마 손을 잡고 걸어야 하는 어린아이들에게 인공적인 놀이동산이 주지 못하는 근사한 스릴을 선사한다.
아이 손을 잡은 엄마와 아빠도 이미 지나 온 유년시절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순간이다.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비둘기 대신 이곳은 까치와 왜가리를 비롯 해 이름을 알 수 없는 여러 새들이 저마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크게 지저귄다. 왜가리는 목소리를 들려주는 대신 그 긴다리를 물에 담가 우아하게 걷다가 재빨리 물고리를 낚아채서는 긴 목으로 물고기가 어떻게 넘어가는지 현실감 있게 보여준다. 동물원에 갇힌 원숭이를 바라보는 것보다 진귀하고 흥미롭다.

제천은 꽃잔치가 열려 저마다 그 자태를 뽑내느라 서로 고개를 내민다. 지금은 큰 금계국과 샤스타데이지 그리고 보랏빛 야생화들이 어우러져 초록빛 돗자리에 앉아있다. 금계국과는 다른 큰 금계국은 외래종이라 토종 생태계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친다니 안타깝다.

제천을 따라 걷다 우리집을 중심으로 오른쪽 끝에 다다르면 머리를 한껏 늘어트린 버드나무 가족이 등산로 입구를 열어주고 왼쪽 끝에 다다르면 호수공원으로 가는 길을 열어준다. 버드나무 가족은 걸어서 충분히 만날 수 있지만 반대 방향은 거리상 늘 자전거의 도움을 받는다.

이리저리 나를 위로하는 산책길 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 장소는 이미 나의 아지트가 되어버렸다. 이 곳에 앉아 명상을 하기도 하고 책을 읽기도 하고 차를 마시기도 한다.

조용히 눈을 감아본다. 문득 몇 가지의 소리가 들리는지 가늠해본다. 정확히 세어보기 전까지는 3~4가지의 소리일 거라고 어림잡았으나 하나하나 헤아려보니 생각보다 많은 소리가 들렸다.

흘러가는 물소리,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 학교에 늦어 빠르게 뛰어오는 아이들의 발소리, 따르릉 자전거 소리, 함께 산책하며 지나가는 사람들의 말소리, 인근 학교 종소리, 저 멀리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와 공사장 소음 그리고 내 마음의 소리

조용히 눈 감는다는 것은 잠시 멈추는 것이다. 멈춰야 내 마음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우리는 어디서든 멈출 수 있다. 불필요한 것을 보고, 불 필요한 것을 듣고, 불 필요한 것을 말하고, 불 필요한 것을 먹고, 불 필요한 것을 사고, 불 필요한 곳에 갈 필요가 없다.

불 필요한 것을 자꾸 하다보면 불 필요한 생각이 늘어나고 그러다 보면 우리는 멈출 수 없다. 나의 생이 언제까지 허락될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우리는 삶의 매 순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지가 있다. 철저히 내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 누구의 탓도, 핑계도 없이 위풍당당하게 내 길을 걸어가면 그만이다.

조용히 눈을 감고 내 마음에게 전하는 나의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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