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턴은 우리에게 친숙한 과학자의 이름이고 아틀리에는 창작하는 공간을 의미한다. 타이포그래퍼 유지원 작가와 다정한 물리학자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김상욱 교수는 이 책에서 공통된 주제를 가지고 그들의 생각을 펼쳐나간다. 정말 신선한 출발이었다.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은 각기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이 공통된 창의력을 발휘한다는 점이 충격이면서 동시에 질투가 난다고 추천사를 쓰기도 했다.
책에서 유지원 작가는 과학과 여러 분야의 지식들을 예술 창작의 실천으로 귀결하는 데 관심이 있다고 밝혔다. 양자물리학에 관심이 있어 김상욱 교수의 글과 강의는 들어본 적이 있지만 그래픽 디자이너이면서 타이포그래퍼인 유지원 작가에 대해서는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그런데 오히려 그녀가 전하는 수많은 이야기가 내게는 숨은 진주를 발견한 것처럼 설레었다.
그녀를 통해 라파엘 로자노 해머의 전시 '결정의 숲(2018)의 한 작품 <배비지 나노 팸플릿 2015>의 작품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과학과 예술이 통합되어 결국 내 마음이 움직이고 흔들리는 이런 느낌이 난 정말이지 참 좋다.
인간의 말소리는 공기를 진동시킨다. 이렇게 발생된 공기의 파동은 전 지구의 육지와 바다를 돌아다닌다. 인간의 말소리가 바꾸는 공기의 움직임을 지구 상의 대기의 모든 원자가 받아들이는 데에 걸리는 시간은 스무 시간이 채 안 된다.(중략) 지구의 공기 자체가 전 인류의 태곳적 행적부터 기록된 '거대한 도서관'이라고. 그러니 우리가 하는 모든 말은 지구의 공기에 진동의 씨를 남기는 셈이다. (영국의 수학자 찰스 배비지가 1837년에 발표한 논문)
그녀는 이 글을 읽고 우리말 관용구인 "말이 씨가 된다."가 떠올랐다고 한다. 참 적절한 비유가 아닐 수 없다.
김상욱 교수는 역시 책에서 양자역학 이야기를 빼놓지 않았다. 1920년대 유럽이라는 시공간은 양자역학과 초현실주의를 동시에 탄생시켰다고 전하며 이 흥미로운 사건들이 과연 우연일지 의구심을 품는 것 같았다. 양자역학의 중요한 개념인 '중첩'과 '관측'의 개념을 설명하면서 아무리 설명을 해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두고 양자 해석의 창시자 닐스 보어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고 전한다. "양자역학이 아니라 인간의 언어에 문제가 있다." 중첩이나 관측이라는 '현상'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 그런 현상을 제대로 기술할 언어가 우리에게 없다는 것이 문제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양자역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칼 라르손, 오늘도 행복을 그리는 이유>라는 책에서 소개되었던 박준의 <광장>이라는 시의 한 대목이 이 책에도 똑같이 실려서 참 반가웠다.
"사람이 새와 함께 사는 법은 새장에 새를 가두는 것이 아니라 마당에 풀과 나무를 키우는 일이다."
이번 기회에 아예 박준 작가의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라는 시집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미술관에서 과학을 보는 물리학자와 과학에서 예술을 읽는 타이포그래퍼의 만남이 어떤 연결을 만들어 내는지 궁금하다면 꼭 읽어보길 추천한다. 읽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인식의 확장이 일어나는 책이라 감히 단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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