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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어 수업(한동일)

달빛마리 2020. 9. 3.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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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어 수업/한동일/흐름출판

 

사회적 거리두기가 격상되면서 결국 다시 도서관도 휴관에 들어갔다. 도서관 안에서 책을 읽지는 않았지만 반납과 대출은 가능한 상태가 되었는데 이제는 그 마저도 어려운 상태가 되었다. 질병관리본부에서 지켜달라는 것만 잘 지켜도 이런 사태로 악화되지는 않았을 텐데 '나 하나쯤은 괜찮아'라는 생각이 참담한 결과를 낳았다. 이제는 이것이 '무지'인지 '이기'인지도 구분이 되지 않는다. 

 

서두가 길었다. 그리하여 도서관이 아닌 서점에서 다시 대출을 하기 시작했고 그 책들을 기다리는 동안 반강제적으로 책장에 있는 책들을 다시 읽는 시간을 가졌다. 

 

이 책은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권했고 앞으로도 꾸준히 권하고 싶은 책이다. 이 책의 작가 한동일은 한국인 최초 그리고 동아시아 최초 바티칸 대법원 변호사이다. 로마에서 10년 유학한 후 귀국해서 잠시 쉬었다 돌아갈 계획이었는데 우연찮게 서강대에서 라틴어 강의를 하게 되었다. 

 

작가가 서강대에서 약 6년에 걸쳐 강의를 했던 '라틴어 수업'의 내용들을 정리한 것이 바로 이 책이다. 그의 라틴어 강의는 타 학교 학생과 교수들 심지어는 일반인들까지 청강을 하러 찾아오는 등 최고의 명강의로 평가받은 바 있다. 그런 주옥같은 강의들을 만날 기회를 영영 잃을 뻔했는데 이 책을 통해 운 좋게 만나게 되어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Utere Felix

 

 


오늘에 집중하고 현재를 살라는 의미의 '카르페 디엠 Carpe diem'은 많은 사람들이 한 번쯤은 들어봤을 만한 친숙한 라틴어다.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영화에서 나온 대사로 유명한데 작가는 이 책의 서두에서 그 영화 속에서 한 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까지 스트레스를 받으며 지겹도록 외우던 것이 바로 라틴어 동사 변화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라틴어는 동사 변화만 160개정도로 어렵고 까다로우며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언어다. 그러나 가톨릭 신부들을 포함 해 여전히 누군가는 배우고 있는 언어다. 내가 아는 신부님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메모를 어딘가에 붙여두어야 할 때는 꼭 라틴어로 적어둔다는 말씀을 하신 적도 있다. 그만큼 쉽게 그 의미를 알 수 없는 언어다. 그러데 작가는 어떻게 어려운 '라틴어 수업'으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을까?


Si vales bene est, ego valeo 

당신이 잘 계신다면, 잘되었네요. 나는 잘 지냅니다. 

이 문장은 로마인들이 편지를 쓸 때 애용한 첫인사 말이라고 한다. 당시에는 종이가 귀했기 때문에 이 문장 전부를 다 쓰지 않고 각 단어의 첫 글자를 따라 'S.V.B.E.E.V.'라는 약어로 표시하기도 했다.

 

 

로마인은 인사할 때 상대가 한 명이면 'Salve!' 또는 'Ave!'라고 인사하고 여러 명일 경우는 'Salvete'라고 인사했는데 그 뜻은 모두 '안녕하세요'라는 의미라고 한다. 결국 'Ave Maria 아베 마리아'는 '안녕하세요, 마리아'라는 뜻이다. 책을 읽는 동안 이렇게 우리에게 익숙한 혹은 처음 마주치는 라틴어를 역사와 문화를 배경으로 그리고 작가의 경험을 녹여 내 쉽게 풀이해 준다.


Hodie mihi, cras tibi

오늘은 나에게, 내일은 너에게 

로마의 공동묘지 입구에 새겨진 문장이라고 한다. 오늘은 내가 관이 되어 들어왔고, 내일은 네가 관이 되어 들어올 것이니 타인의 죽음을 통해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라는 뜻의 문구다. 작가는 어머니의 죽음을 통해 스스로의 죽음을 바라보았다고 고백하며 스스로의 삶이 어떤 기억으로, 어떤 향기로 남게 될지는 살아가는 동안 끊임없이 묻고 또 물어야 하는 질문임을 독자에게 상기시켜 준다. 다음의 라틴어가 내 마음에 와서 콕 박히는 순간이었다. Si vis vitam, para mortem. 

삶을 원하거든 죽음을 준비하라.


아주 오래전에 김수환 추기경님께 세배를 드리러 간 적이 있었다. 새해 첫날 이른 아침 꽁꽁 언발로 인사를 드리러 갔었는데 한없이 인자한 미소로 인사를 하시며 5단 묵주와 세뱃돈 만원을 건네주셨다. 책 속에서 작가가 김수환 추기경님의 말씀을 인용할 때 그 날의 기억이 선명하게 떠올라 괜히 코끝이 시큰해졌다. 연보라색 앞코가 인상적인 뾰족구두를 신고 베이지색 코트로 몸을 감싼 채 세 찬 바람을 맞으면서 총총거리며 걷던 그 날의 내 구두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김수환 추기경님은 "사랑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가는 데 70년이 걸렸다" 라고 하셨다. 과연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일까? 버틀런드 러셀도 "사랑을 두려워하는 건 인생을 두려워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Tempus fugit, amor manet. 시간이 흘러도 사랑은 남는다.


우리는 마치 우리의 삶이 영원할 것처럼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앞으로 나에게 남아있는 날이 얼만큼인지 아무도 알 수 없다. 가끔은 가던 길을 멈춰 내 인생을 뒤돌아 볼 필요성이 있다. 작가의 말처럼 '나는 매일매일 충분히 사랑하며 살고 있는지' 그리고 '남은 생 동안 간절하게 무엇을 하고 싶은지' 생각 해 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 두 문장의 의미를 염두해 두지 않고살아간다면 삶의 마지막 순간에 서서 후회하지 않을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Dilige et fac quod vis. 사랑하라, 그리고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하라.

현재 절망 속에 빠져 있는 많은 사람들을 위해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위로가 되었던 라틴어로 이 글을 마무리하고 싶다.

 

Dum vita est, spes est. (툼 비타 에스트, 스페스 에스트.) 삶이 있는 한, 희망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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