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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유발 하라리/조현욱 옮김/이태수 감수)네 번째 이야기

달빛마리 2020. 11. 12.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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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유발 하라리/김영사

 

사피엔스의 4부 '과학혁명'은 핵물리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가 최초의 원자폭탄이 터진 후, 힌두 서사시 <바가바드기타>의 한 구절을 인용한 것으로 강렬하게 시작한다. "이제 나는 죽음이 되었다. 세상을 파괴하는 자가 되었다."

유발 하라리는 원자폭탄이 터지던 그 순간부터 인류는 역사의 진로를 변화시킬 능력뿐 아니라 역사를 끝장낼 능력도 가지게 되었다고 밝힌다. 이것은 우리가 잘못된 선택을 할 때 과학혁명이 인류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살아있는 역사이면서 동시에 복선이었다.

 

유발 하라리에 의하면 과학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 대부분의 인류문화는 진보를 믿지 않았다. 그러나 근대에 들어서면서 인류가 아직도 모르는 중요한 것들이 많다고 인정했고 그런 무지의 인정은 과학적 발견이 우리에게 새로운 힘을 줄 수 있다고 생각에 이르렀다.

 

결국 과학과 제국은 결합했고 돈은 제국 건설과 과학 진흥에 필수적인 요소가 되었다. 과학혁명과 진보라는 개념이 도래되면서 이 아이디어는 경제용어로 번역되었다. 자연스럽게 자본주의가 등장하고 자본주의에는 다음과 같이 특정한 윤리가 포함되어 있었다. 

자본주의는 경제적 교리를 넘어서는 무언가가 되었다.
사람들에게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아이를 어떻게 교육해야 하는지, 심지어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까지 일러주는 가르침들이다. 그중 가장 핵심 신조는 경제성장이 최고의 선이라는 것, 최소한 그 대용품은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정의와 자유, 심지어 행복까지도 경제성장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p.444

꼬리에 꼬리를 물어 과학혁명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행복의 척도'로 이어진다. 유발 하라리 역시 행복이 어느 정도 물질적 요인의 산물인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그런 행복감은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 이유를 다음의 한 문장으로 깔끔하게 표현할 수 있다니 그가 구사한 언어의 매력이 느껴진다. "이 모든 것은 머지않아 예외가 아닌 일상이 되어버릴 것이다."

행복이란 불쾌한 순간을 상쇄하고 남는 여분의 즐거움의 총합이 아니라, 그보다는 개인의 삶을 총체적으로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것으로 바라보는 데서 온다는 것이다. 행복에는 중요한 인지적, 윤리적 요소가 존재한다.  p.552

결국 이 모든 것은 우리의 가치체계에서 오는 것이라고 밝힌 유발 하라리는 니체의 말을 인용한다. 

만일 당신에게 살아야 할 이유가 있다면 당신은 어떤 일이든 견뎌낼 수 있다.
의미 있는 삶은 한창 고난을 겪는 와중이더라도 지극히 행복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의미 없는 삶은 아무리 안락할지라도 끔찍한 시련이다. 

니체 

결국 의미 있는 삶은 고난을 겪는 와중이더라도 지극히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책의 이야기는 3부 '인류의 통합'에서 내가 개인적으로 제일 인상적이었던 불교의 교리로 다시 이어진다.

불교에서 번뇌의 근원은 고통이나 슬픔에 있지 않다. 심지어 덧없음에 있는 것도 아니다. 번뇌의 진정한 근원은 이처럼 순간적인 감정을 무의미하게 끝없이 추구하는 데 있다. 이 때문에 우리는 항상 긴장하고, 동요하고, 불만족스러운 상태에 놓인다. 이런 것을 추구하기 때문에 우리 마음은 결코 만족하지 못하고, 기쁨을 느낄 때조차 만족스럽지 않다. 기쁜 감정이 금방 사라져 버릴 것이 두렵고, 이 감정이 이어져 더 강해지기를 갈망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번뇌에서 벗어나는 길은 이런저런 덧없는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감정이 영원하지 않다는 속성을 이해하고 이에 대한 갈망을 멈추는 데 있다. 이것이 불교 명상의 목표이다. 명상을 할 때는 자신의 몸과 마음을 깊이 관찰하여 모든 감정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목격하며, 그런 감정을 추구하는 것의덧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중략) 일단 당신이 특정한 감정에 대한 추구를 멈추면 어떤 감정이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어쩌면 일어났을지도 모르는 무언가를 공상하는 대신에 지금 이 순간을 사는 것이다. 그 결과 완전한 평정을 얻게 된다. 평생 미친 듯이 쾌락을 찾아 헤매던 사람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수준의 평정이다. (중략)
파도가 마음대로 오고 가게 놔둔다. 얼마나 평화로운가!  p.557-558

인류의 역사 서사시를 다루는 이 책, 사피엔스에서 그것도 이스라엘에서 태어난 역사학 교수로부터 불교에 대한 정확한 개념을 접하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올해 읽었던 수많은 책에서 유독 나를 울리고 나에게 A-ha moments를 주었던 내용들이 공통적으로 불교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는 사실을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나는 전혀 알지 못했을 거다. 이로서 내 삶의 숙제가 풀리는 이 이상한 기분을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나는 지난달에 Who am I?라는 제목으로 블로그에 글을 쓴 적이 있었다. 첫 문단은 내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기 때문에 스스로 내가 누구인지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하며 살아왔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내가 누구인지 알아야 하고 그러기 위한 방법의 일환으로 책을 읽어야 한다는 글을 썼었다. 

2020/10/26 - [나누고 싶은 이야기] - Who am I?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

Who am I ?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

나는 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다고 자신하고 살아왔을까? 자신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하는 기준은 단순히 내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는 충분

u-r-what-u-do-at-dawn.tistory.com

그런데 이 책에서 유발 하라리는 신기하리만큼 내 사고의 발자취를 꿰뚫고 있는 것 같았다. 다음은 사피엔스의 559페이지에 적힌 유발 하라리의 글이다. 

행복을 얻는 비결은 자신의 진실한 모습을- 자신이 정말로 어떤 사람인지를-파악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스로의 감정, 생각, 호불호를 자신과 동일시하는데, 이는 잘못이다. 이들은 분노를 느끼면 '나는 화가 났다. 이것은 나의 분노다'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은 어떤 감정을 피하고 또 다른 감정을 추구하느라 일생을 보낸다. 그들은 자신과 자신의 감정은 다르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특정한 감정을 끈질기게 추구하는 행위는 자신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함정이라는 사실도 모른다. 

 

나는 순간 유레카를 외치고 싶었다. 내가 삶을 살면서 가장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 단언할 수 있을 정도로 벅찬 감정을 느꼈다. 


유발 하라리는 이 책을 통해 사피엔스는 신이 된 동물이라고 비유하며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른 채 불만스러워하며 무책임한 신들이라고 했다. 이보다 더 위험한 존재가 또 있을까?라는 그의 물음은 결국 독백이 아니라 한 명의 사피엔스가 또 다른 사피엔스가 전하는 말이었다. 

 

 

 

이 책을 읽는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더 이상 자본주의의 편리함에만 매몰되지 말고 그가 던져주는 선택의 메시지를 간파할 수 있었으면 하고 바란다.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 인류를 위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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