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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앞의 生 (에밀 아자르)

달빛마리 2021. 3. 28.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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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앞의  生/에밀 아자르(로맹 가리)/문학 동네

 

 

불어를 독학으로 익힌 후 원어로 쓰인 문학작품을 자유자재로 읽을 수 있는 분들이 존경스럽다. 번역은 어디까지나 번역일 뿐, 타인의 틀에서 한번 걸러진 창작물은 있는 그대로를 수용할 수 있는 자유가 제한된다. 

 

'자기 앞의 生 (La vie devant soi)'으로 번역된 이 작품은 프랑스어 원문으로 살펴보면 현재를 기준으로 과거의 삶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 모모의 남은 삶을 의미하는 것이다. 

Il ne faut pas pleurer, mon petit, c'est naturel que les vieux meurent.

Tu as toute la vie devant toi.

(울지 마, 얘야. 늙은 사람들이 죽는 건 당연해. 넌 네 앞에 생이 남아 있어.)

 

에밀 아자르(로맹 가리)는 우리에게 모모가 로자 아주머니와 함께 생활 한 14년의 생을 들려주었지만 그의 남은 시간은 어쩌면 독자에게 맡기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평소에 의식하지 않으면 떠올리지도 못할 매춘, 마약, 종교, 인종 차별, 안락사 등의 사회문제들을 어린아이의 눈을 통해 코끝으로 가져다준 작가, 에밀 아자르는 사회적 약자들임에도 불구하고 모모에게 보여 준 따스함을 통해 우리를 뭉클하게 만든다. 

 

모모는 하밀 할아버지께 사람이 사랑없이 살 수 있냐고 시간 차를 두고 반복해서 묻는다. 처음에는 대답을 회피하셨고 결국 마지막엔 그럴 수 있다고 답하셨다.  그러나 로자 아주머니가 세상을 떠나신 후 라딘 아주머니와 라몽 아저씨를 통해 모모는 주체적으로 사랑을 믿고 선택한다. 

나딘 아줌마는 내게 세상을 거꾸로 돌릴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무척 흥미로운 일이다. 나는 온 마음을 다해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라몽 의사 아저씨는 내 우산 아뤼튀르를 찾으러 내가 있던 곳까지 다녀오기도 했다. 감정을 쏟을 가치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아르튀르를 필요로 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고, 그래서 내가 몹시 걱정했기 때문이다. 사랑해야 한다
p.311

마지막 문장을 통해 감히 모모의 남은 삶을 예측하고 싶었다. 그의 여생은 받은 사랑을 추억하고, 나눌 사랑을 기약하는 삶이기를...

 

작가는 작품을 통해 알게 모르게 자신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로맹 가리'가 느껴지던 순간이 있었다. 

"내가 불쌍한 사람들 얘기를 쓸 때는 누굴 죽이지 않고도 하고 싶은 얘기를 모두 다 쓸 거예요. 그건 누굴 죽이는 것과 같은 힘이 있대요." 

p.268

 

로맹 가리 (news.naver.com)

 

모모의 대사는 이름을 바꿔가며 작가 생활을 유지하던 그의 심적인 괴로움과 그 사실을 유서로 남긴 채 자살로 생을 마감한 로맹 가리의 평소 생각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흔히 보고 싶은대로 현상을 바라본다. 그래서 쉽게 판단하고 자신의 의견이 옳다고 생각한다.  나의 생각과 일치하면 맞고 다르면 틀리다고 생각하는 이분법적 사고에 빠지기 쉽다. 그러면 영영 틀 안에서 나오기 어렵다. 하밀 할아버지는 이런 관점에서 모모에게 다음과 같은 큰 가르침을 준다. 

"완전히 희거나 검은 것은 없단다.
흰색은 흔히 그 안에 검은색을 숨기고 있고, 검은색은 흰색을 포함하고 있는 거지."

p.96

자기 발전은 자기 경멸에서 시작된다고 하는 말에서 위안을 얻어야 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요즘 자기 경멸에 빠져있다. 직관이 발달 해 판단이 빠른 것이 삶의 독이 되는 순간이 많았다. 의견은 사실이 아니거늘 사실화시키고 흑백논리에 빠져 살았던 것 같다. 소설 속에서 철학을 발견하는 기쁨을 얻어 행복했다. 그러나 부단이 노력하지 않으면 늘 그 자리다. 나를 채워 틀을 벗어나고 싶다. 노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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