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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키호테(미겔 데 세르반테스 사아베드라 지음/안영옥 옮김)

달빛마리 2021. 12. 14.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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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키호테/미겔 데 세르반테스/열린 책들

스페인어 원서로 작품을 접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겠지만 현실은 어림도 없다. 배움의 기회가 있었으나 가르쳐주시는 선생님의 사정으로 이어나가질 못해 영 아쉽다.

큰 마음먹고 읽는 대작인데 어설픈 번역으로 책을 읽으면서 거스르는 느낌을 원하지 않아 책을 읽기도 전에 번역가에 대해 먼저 공부했다. 인터뷰 글과 강의를 접하면서 고려대 스페인어과에 재직하고 계신 안영옥 교수님의 번역을 택했다.

번역을 위해 5년 동안 스페인에서 돈키호테의 발자취를 그대로 쫓으셨다는 글을 읽고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교수님께서 번역을 하는 동안 자녀분이 '어머니가 돈키호테가 되신 것 같다'라고 전한 말씀도 농담으로 들리지 않았다.

돈키호테 1,2

원고지 6700장에 달하는 돈키호테 1,2권을 읽으면서 자연스러운 번역뿐만 아니라 자세한 주석에 매번 감동했다. 성서 다음으로 지구 상에서 가장 다양한 언어로 번역되었다는 책 돈키호테를 안영옥 번역가의 언어로 읽을 수 있어 감사했다.

돈키호테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리고 이 책을 여러 번 반복해서 읽은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책을 처음 읽으면서도 여러 번 읽을 각오로 임했다. '돈키호테'하면 표면적으로 떠오르는 이미지나 편견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감히 세르반테스의 의중을 살피고 싶었다.

책을 읽으면서 작가로서 세르반테스의 문학적 기교에 여러 번 감동했다. 동물의 의인화와 산초의 입담을 통해 독자들에게 즐거움을 가져다주면서 동시에 돈키호테를 통해 삶을 살아가는 방식을 무심히 툭 던져주는 방식, 무엇보다 독자들이 궁금해할 이야기를 시간의 흐름을 두고 증폭시켰다가 다른 인물들을 통해 그대로 이어나가는 전개 방식에 감탄했다. 예측 밖의 사건들과 기대하지 않았던 돈키호테의 분별력은 또 어떤가, 책장을 넘기면 늘 새로운 여정이 펼쳐졌다.

많은 소설가와 철학자 그리고 비평가들이 < 돈키호테> 작품을 극찬했다. 특히나 프랑스 비평가 르네 지라르는 <돈키호테> 이후에 쓰인 소설은 <돈키호테>를 다시 쓴 것이거나 그 일부를 쓴 것이라고 언급했다.

세르반테스의 삶을 먼저 공부하고 책을 읽으니 책의 곳곳에서 그의 삶이 그대로 묻어남을 느낄 수 있었다. 개종한 유대교 집안의 자손이고, 전쟁에 참여해 팔을 잃기도 하고, 고국으로 돌아오던 중 포로가 되어 노예 생활을 하기도 하고, 극심한 가난에 시달리고, 이탈리아에서 주교의 시종으로 일하던 시절 르네상스 사상에 동조되기도 하고, 밀을 징수한 돈을 예금해 둔 은행이 파산하여 감옥에 갇히기도 한 그의 삶이 돈키호테가 세르반테스의 상상력으로만 만들어진 작품만은 아니라는 것을 증명했다.

그 당시 스페인의 종교재판관에 의한 검열로 세르반테스는 자신이 직접 이 책을 쓴 것이 아니라 아랍인의 현자 어느 무어인이 쓴 책을 단순히 스페인어로 번역만 했을 뿐이라는 설정으로 책을 써 내려간다. 게다가 '돈키호테'라는 작품이 명성을 얻은 후 세르반테스가 아닌 다른 사람이 돈키호테 2를 먼저 출판하는 바람에 세르반테스가 종종 책에서 자신을 포함한 여러 명의 작가를 동시에 언급하는 데다가 669명의 인물이 등장하므로 정확한 흐름을 놓치지 않고 읽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기사 소설에 탐닉한 채 스스로의 망상에 갇혀 사는 돈키호테에게 그의 종자 산초 판사의 존재가 없었다면 이 작품은 이렇게 큰 명성을 얻지 못했을 것 같다. 그의 주인이 광기에 사로잡혀 전진할 때 단순하고 무지한 산초가 돈키호테의 행동에 강약을 조절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섬의 통치자가 될 목적으로 돈키호테를 따라다닌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섬의 통치자가 되자 산초는 그 누구보다 현명하게 섬을 다스렸고, 스스로 자신의 위치가 어디인지 알고 깨끗하게 그 자리를 포기하는 면모까지 보여주었다.

책의 끝을 향해 갈수록 돈키호테와 헤어지는 아쉬움보다는 세르반테스와 헤어지는 아쉬움이 컸다. 책을 다 읽고 안영옥 번역가의 강의를 들으면서 작품에서 놓쳤던 새로운 문학적 의미를 알게 되어 감사했다. 모험의 결과는 항상 어떤 식으로든 존재하기 마련이라는 것, 돈키호테가 겪은 모험의 결과는 단순히 돈키호테의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산초'라는 새로운 돈키호테를 탄생시켰다는 것이었다.

돈키호테를 읽고 그의 신념과 실천하는 힘을 부러워하지 않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책을 마무리하면서 생각이 많아졌다. '나는 어떤 신념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을까?' ' 내 삶은 내가 만들어 가는 것인데 과연 나는 잘 살고 있는 것일까?'

그러다 문득 매년 다이어리 앞에 붙여 놓는 포스트잇의 나용이 떠올랐다.

Life isn't about finding yourself, Life is about creating yourself.
(내가 원하는 삶은 내가 만들어 나간다.)


내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명확한 삶의 목적을 정하고 모든 것은 내가 가진 관점의 문제라는 것을 깨달아 신념에 따라 행동하고 타인에게 나의 삶을 , 나의 시간을 내어주는 것이 의미 있는 삶임을 아는 것이 내가 원하는 삶이다.

감사하다, 돈키호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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