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이끄는 힘, 독서!

책, 이게 뭐라고(읽고 쓰는 인간 장강명 지음)

달빛마리 2022. 1. 20.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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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게 뭐라고/장강명/arte

읽으면서 내내 즐거운 책을 오랜만에 만났다. 이런 표현이 적합할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재미있을 줄 몰랐다. 김민식 피디님을 통해 장강명 작가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되었고 그의 작품들 중 <한국이 싫어서>라는 소설을 한 권 읽어 본 적이 있다. 

2021.07.25 - [나를 이끄는 힘, 독서!] - 한국이 싫어서 (장강명)

 

한국이 싫어서 (장강명)

김민식 피디님이 장강명 작가의 팬이라고 여러 번 말씀하셔서 작가가 쓴 책들이 궁금했다. 찾아보니 2011년 장편소설 <표백>으로 한겨레문학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다작 작가

u-r-what-u-do-at-dawn.tistory.com

그러나 <책, 이게 뭐라고>는 독서에세이다. 예상치도 못하게 장강명 작가에 대해 이모저모 알게 되었다. 문득 생각해보니 작가가 소설이 아니라 에세이로 독자를 만나게 될 때는 아주 커다란 용기가 필요할 듯하다. 불특정 다수를 향해 내가 누구인지 양파껍질 벗겨지듯 알려지니 말이다. 

 

이 책은 작가가 요조와 독서 팟캐스트 <책, 이게 뭐라고>를 진행하면서 만난 사람들과 책 그리고 그의 작품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일까? 팟캐스트의 제목을 그대로 책의 제목으로 삼았다. 

 

책을 읽으면서 감동을 주었던 첫 문장을 만났다.

나는 성실히 읽고 쓰는 사람은 이중 잣대를 버리면서 남에게 적용하는 기준을 자신에게 적용하고, 그로 인해 반성하는 인간, 공적인 인간이 된다고 생각한다.  p.49

또한, 작가가 쓴 다음의 단락은 소크라테스를 연상하게 만들면서 웃음이 났다.

어렸을 때에는 정말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상대를 만나면 곡 시비를 걸었다. 그렇게 치열한 언어가 오가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무의미한 말 주고받기로는 상대에 대한 나의 진지한 관심을 드러낼 수 없다고 여겼던 것 같다. 나 혼자 토론을 한다고 믿고 상대는 봉변을 당한다고 느끼는 시간들이었다. 말하고 듣기의 고수들끼리는 눈빛과 표정과 웃음, 맞장구만으로도 알차고 그윽한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까지 나는 몰랐다.  p.61

작가가 인생 책을 소개하면서 '어떤 책들은 적당한 시기에 만나야 하는 것 같다'라고 전했는데 나도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중고등학교 때 읽었던 고전들을 다시 만나면서 그 시절의 나는 도대체 어떻게 이 작품들을 이해했을까 싶었던 적이 왕왕 있다. 

 

독서모임을 하면서 가끔 모임의 방향을 고민한다. 어떤 책을 함께 읽는지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책을 매개로 자신의 내면을 열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작가 역시 비슷한 의견을 실어 공감할 수 있었다. 

책이 중심이 되는 사회에서는 당연히 독서 토론도 많이 열려야 한다. '전문가'의 고전 강독을 듣는 모임이 아니라, 지금 여기 우리의 삶을 다룬 책을 매개로 참가자들이 자신의 내면을 여는 자리여야 한다. 온라인 독서 토론도 나쁘지 않지만 오프라인 모임이 더 좋다. 그런 모임이 지역 공동체 네트워크와 결합한다면 좋겠다. 아니, 그런 모임이 바로 지역 공동체 네트워크의 중심축이 되는 풍경을 상상한다. 

 

일 년 독서량이 250여 권 되던 시절이 있었다. 탐닉하듯 읽었고 책을 읽는 것이 일종의 쾌락처럼 여겨지기도 하던 시절이 있었다. 누군가 독서량을 물어오면 나도 모르게 자신 있게 정확한 권수를 말하곤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독서량이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읽은 책의 양만큼 내가 변화했을까? 책에서 깨닫고 배운 내용을 제대로 삶에 적용하고 있을까? 지식의 양은 늘었을지 모르겠지만 그만큼 지혜로워졌을까? 아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많은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철이 들었는지 독서량보다는 읽은 내용을 얼마나 체화시키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작가가 비슷한 내용을 책에 실어 옮겨본다. 

(책을 많이 읽는다고 자랑하는 사람들) 그분들께는 미안한 말씀이지만,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나는 어쩐지 이성 교제 횟수를 자랑하는 고등학생을 보는 것 같다. 그 횟수는 이성 교제에 자신이 없는 청소년한테나 중요하다. "난 이렇게 이성을 많이 사귀어봤다."라고 으스대는 10대는 그 순간 자신이 매력적인 인물이 아닌 것 같아서 겁에 질려있다는 사실을 폭로하는 중이다. 혹시 독서량을 내세우는 이들은 자기 독서의 질에 자신이 없는 것 아닐까.

 

이 책의 곳곳에서 언급된 책들을 읽고 싶어 읽을 책 목록에 빼곡히 적어본다. 그러고 보니 조지 오웰의 단편집을 주문해놓고 아직까지 읽지 못했고 '원 히트 원더'의 작가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가 끝나지 않았으며 The Socrates Express를 다시 읽고 있고 독서모임 경제책도 읽어야 한다는 사실이 떠오른다 :) 끝없는 욕심..

 

그나저나 책에서 언급된 김정운 작가의 '구체적 행복론'에 대해 자세히 들어보고 싶어서 더 이상 진행되지 않는 팟 캐스트를 다운로드했다. '성공은 추상적이고 내 인생의 본질은 지금 여기에 있다는 것, 지금 여기서 느끼는 게 내 인생이라는 구체적인 행복론'을 들으며 나도 장강명 작가처럼 감동을 경험해 보고 싶은 이유에서였다. 

 

책 한권을 만났을 뿐인데 인생 전체를 아우르는 경험을 했다고 해야할까? 책을 좋아하게 된 어린시절의 기억부터 중고등학교 때 읽었던 수많은 고전들, 대학 때 도서관에서 일을 하며 새로운 책들을 만났던 경험 그리고 공부한다고 시작했던 영어원서들.. 지금은 읽고 싶은 책들을 순서에 상관없이 마음껏 읽을 수 있어 행복하고 가끔은 <책, 이게 뭐라고>를 만나듯 생각지도 못했던 책들을 우연히 만나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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