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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멘토 모리(이어령 지음/김태완 엮음)

달빛마리 2022. 3. 18.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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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멘토 모리/이어령 지음/열림원

삼성 고 이병철 회장이 1987년 타계하기 전 절두산 성당 박희봉 신부님께 보낸 질문지를 정의채 몬시뇰 신부님을 거쳐 몇 년 전에 돌아가신 차동엽 신부님이 받으셔서 <내 가슴을 다시 뛰게 할 잊힌 질문>이라는 책을 통해 답하신 적이 있다. 사실 고 이병철 회장은 정의채 몬시뇰 신부님을 만나기도 전에 갑작스레 돌아가셨다. 

 

김태완 기자가 같은 질문을 이어령 작가에게 물었고 그 대답을 엮어 <메멘토 모리>가 출판되었다. 책을 읽어보니 엮은이가 차동엽 신부님의 책조차 읽지 않은 모양이다. 고 이병철 회장의 질문지를 정의채 몬시뇰 신부님이 답하셨다고 적어 놓았다.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도 그렇고 <메멘토 모리>도 그렇고 병중에 계신 분을 인터뷰하면서 제2의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을 의도적으로 연출하고 싶었던 것은 아닌지 고개가 갸우뚱해졌다.

 

내가 엮은이라면 독자를 위해 한평생 무신론자였고 오히려 기독교를 비판하는 입장에서 섰던 그분이 70세의 나이에 세례를 받고 신을 섬길 수 있었던 이유와 동시에 가톨릭이 아닌 개신교를 선택한 이유를 먼저 물었을 것이다. 

 

이혼, 아들의 죽음 그리고 암 선고와 실명의 위기를 겪고 목사가 된 작가의 딸을 위해 아버지가 할 수 있었던 유일한 선택이 늦은 나이에 세례를 받고 딸이 암으로 죽기 전까지 같은 신을 섬기기 위해서였다는 것을 왜 밝히지 않았을까? 

 

그의 딸은 아버지의 사랑을 느껴본 적이 없다. 아버지와 제대로 대화를 나눠 본 적이 없다. 이어령은 더 늦기 전에 '지상의 아버지'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서 자신의 딸이 믿는 '하늘의 아버지'를 함께 믿는다고 썼다. 

김정운 <남자의 물건> 중에서...

 

같은 신을 부르는 호칭이 하느님과 하나님으로 나뉘는 구교와 신교의 차이 때문에 책을 읽는 내내 불편하기는 했지만 철저한 냉담 혹은 종교와 멀리 떨어진 삶을 살고 있는 내가 더 깊이 할 말은 아닌 듯하다. 

 

교리적인 내용은 차치하고 오히려 서문에서 소개된 '메멘토 모리'라는 시가 긴 여운으로 남았다. 

 

메멘토 모리 (이어령)

 

목숨은 태어날 때부터

죽음의 기저귀를 차고 나온다

아무리 부드러운 포대기로 감싸도

수의의 까칠한 촉감은 감출 수가 없어

잠투정을 하는 아이의 이유를 아는가

 

한밤에 눈을 뜨면

어머니 숨소리를 엿듣던

긴 겨울밤

어머니 손 움켜잡던

내 작은 다섯 손가락

 

애들은 미꾸라지 잡으로 냇가로 가고

애들은 새 둥지 따러 산으로 가고

나 혼자 굴렁쇠를 굴리던 보리밭길

 

여섯 살배기 아이의 뺨에 무슨 연유로

눈물이 흘렀는가

너무 대낮이 눈부셨는가

너무 조용해 귀가 먹먹했는가

 

굴렁쇠를 굴리다 흐르던 눈물

무엇을 보았는가

메멘토 모리

훗날에야 알았네

메멘토 모리 


이어령 작가가 신을 믿고 기적을 체험했다거나 기독교적인 교리만 설명하는 데 그쳤다면 이 공간에서 <메멘토 모리>를 소개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돌아가시기 전에 건강이 허락되어 이어령 작가가 책의 처음과 끝을 구성하고 글을 썼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겠지만 어설픈 구성에도 불구하고 그가 전하는 독특한 힘이 나를 끌어안았다. 

 

p.93 "질문은 의문이다. 그러나 물음표에 느낌표가 따르지 않으면 빈 깡통이 된다. 그리스인들은 그 느낌표를 얻기 위해 철학을 했다. 그리스 말로 '타우마제인'이라는 것이다. 물음표는 지성이고 느낌표는 감성이요 영성이다. 나는 물음표와 느낌표 사이를, 그 문지방 사이를 아직도 헤매고 다닌다. "

p.144 나의 삶을 다시 읽는 것, 그 의미를 다시 찾는 것, 그것이 종교다. 

p.233 욕망만 있고 끝없이 달성할 수 없는 것 그게 지옥이지.

내 묵상의 끝은 여전히 버트런드 러셀의 <내가 기독교를 믿지 않는 이유>에 머물러 있지만 작가가 밝혔듯 삶에서 '절대'는 없다. 단지 나는 지금 삶의 국면에 자발적으로 그 분과 거리를 두고 있을 뿐이다. 아무것도 장담할 수 없고 단정 지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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