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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장소, 환대(김현경)

달빛마리 2022. 2. 24.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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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장소, 환대/김현경/문학과 지성사

한 마디로 표현하면 나를 압도해버린 책이었다. 프롤로그부터 몰입시켜 작가의 세계로 나를 가차 없이 끌어당겼다. 

 

작가는 대학에서 인류학을 가르쳤고 이 책이 그러하듯 학술논문에도 대중적인 에세이에도 속하지 않는 새로운 글쓰기 형식을 실험하는 중이라고 한다. 

 

나는 왜 태어났고 왜 살아가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삶의 목적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희미하게 풀릴 무렵 작가는 내게 다른 고민을 던져 준다. 

 

우리는 어떻게 이 세 상에 들어오고 사람이 되는가?

우리가 사람이기 때문에 이 세상에 받아들여진 것인가, 아니면 이 세상에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사람이 된 것인가? 적대적인 타자를 환대하는 것은 가능한가? 

 

제목 그대로 사람, 장소 그리고 환대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아렌트와 고프먼의 연구를 참조하며, 상호작용하는 사회 안에서 어떻게 불평등이 이루어지는지 그리고 이 불평등은 어떤 문제를 발생하는지 작가는 설명한다.

 

아델베르트 폰 샤미소 원작의 <그림자를 판 사나이>를 프롤로그에 소개하며 그림자가 사람들 사이에서 살기 위해 갖추어야 할 조건임을 밝힌다. 구원을 위한 조건은 아니지만 일종의 스티그마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작가는 강조했다. 

 

이 책을 제대로 쫓기 위해서는 작가의 시점에서 바라보는 '그림자'의 의미를 이해해야 한다. 장 보드리야르가 <소비의 사회>에서 그림자를 '상품 사회에서의 인간소외'라고 바라봤던 해석에서 멀어져야 한다는 의미다. 

 

이렇게 그림자를 해석한 후 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사람'의 개념을 하나씩 짚어내려간다. '사람'과 '인간'이 어떻게 다른지 태아의 사망 후 왜 우리가 적절한 의식을 치르지 않는지, 역사 속 노예의 모습과 전쟁이 범죄가 아닌 상황에서 군인은 어떤 존재인지 그리고 사형수까지...

 

책을 읽으면서 외국인의 문제나 페르소나 그리고 배제와 낙인을 다루는 문제는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했고 지금까지 내가 읽은 책들을 작가가 단권화시켜준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친밀하게 다가왔다. 

 

다만 2장 성원권과 인정투쟁에서 오염의 메타포를 설명할 때 '더럽다'라는 의미가 전해오는 느낌이 너무나 통렬했다. 인생을 살면서 한 번쯤은 '더럽다'라고 말하고 싶던 대상이 있지 않았을까? 죽일 수도 길들일 수도 없는 타자에 대한 미움과 두려움을 담고 있는 말, 만약에 없다면 정말 무난한 삶을 살았고, 살고 있다는 의미일 수도 있겠다. 

 

타자에게 던지는 '더럽다'라는 말은 상대방의 존재를 부정하는 동시에, 그러한 부정이 굳이 필요했음을 인정함으로써 그의 주체성을 역설적으로 인정한다는 것이다. 
p.80

책을 읽는 동안 작가가 '굉장히 날 서 있는 사람'이란 인상을 받았다. 평소 성품은 알 수 없지만 최소한 책을 쓰는 동안은 굉장히 날 서 있었으리라는 추측이 가능했다. 극단에 치우쳐 보이는 상황들 혹은 과거에는 그러했지만 더 이상은 100% 사실로만 간주할 수 없는 예를 들며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려고 애쓰는 모습이랄까... 

 

암튼 그런 극단성을 차치하면 우리가 사회를 바라보는 방식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에 충분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사회 인문학 혹은 사회 과학이라는 테두리가 이렇게 광활하게 느껴지다니... 결국 삶은 나와 타자를 배제하면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에게 우정 같은 절대적 환대가 가능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나 자신이 조건부의 환대는 옳지 않다고 믿는 사람임이 분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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