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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복,飮福 (강화길, 2020 제11회 젊은작가상 대상)

달빛마리 2020. 5. 7.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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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작가상은 등단한 지 10년이 안 되는 젊은 작가들이 한 해 동안 발표한 소설(중단편 소설)중 대중들의 사랑을 받은 7편의 작품을 골라 수여하는 상이다. 수상자는 강화길, 최은영, 김봉곤, 이현석, 김초엽, 장류진, 장희원, 그중에서도 오늘은 강화길의 <음복>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이 작품은 젊은 작가상 대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유교의 제사문화와 이것을 둘러싼 가부장제를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사실적으로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소설이 아니라 흡사 본인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상세하게 풀어낸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소설을 읽는 내내 숨이 막히고 가슴이 답답해서 책을 덮어버리고 싶었다. 20분 분량의 책을 읽고 세 시간은 머리가 복잡한 느낌이랄까.. 아마도 떠올려지는 이야기들이 있어서 그러했으리라 짐작된다.

친정 엄마는 장남의 아내로 사시면서 사십년이 가까운 세월동안 일 년에도 몇 번씩 제사음식을 준비하셨다. "너는 꼭 제사 안 지내는 집안에 시집갔으면 좋겠다"라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던 엄마의 목소리가 귓가를 윙윙 울리는 것 같았다. 우습게도 난 결혼전 이성으로 누군가를 만날 때면 의식적으로 장남을 피하고 그 집안의 제사 유무를 묻곤 했다.

 

아버지가 집안의 둘째 아들이라서 본인 집에서 제사를 안 지낸다는 말에 혹해서 후한 가산점을 주고 결혼을 했다. 그런데 막상 현실은 큰어머니 이상으로 제사 준비에 열성적이신 시어머니를 만나 큰댁 큰며느리보다 더 열성적이어야 하는 작은 집 며느리가 됐다.

남편은 아내의 조부모 제사가 언제인지 조차 모르는데 아내는 얼굴도 모르는 남편의 조상 제사를 남편이 잊을까 미리 날짜까지 알려주며 참여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나는 아직도 모르겠고 사실 알고 싶지도 않다.

게다가 나는 요리조리 힘든 일을 피하면서 말로만 일을 하는 미꾸라지 같은 큰 며느리의 수작을 그저 넋 놓고 지켜보아야 하는 일개 작은 며느리다. 그러다 큰 며느리가 넌지시 내가 일을 못한다는 눈치까지 줄 때면 부침개 주걱을 냅다 집어던지는 상상을 하곤 한다.^^

 

큰며느리를 탓할 수도 없고, 어머니나 큰 어머니를 탓할 수도 없는 현실이다. 한국사회에서 여자로 태어나 이런 풍토를 가진 집안에 들어온 내 탓이고 내 운이다.

올케가 들어온 후 친정아빠는 '제사 금지'를 선언하셨다. 40년 만에 친정엄마가 무거운 짐을 벗는 순간이었다. '올케는 그 무게가 무엇인지 짐작조차 못하겠지......’ 남동생과 살아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니 오히려 제사의 굴레에서라도 벗어나게 해줘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요즘은 명절 때마다 제사 대신 해외로 여행을 가는 며느리들도 많다. 놀라운 것은 시댁의 문화가 아니라 며느리의 자발적인 선택도 있다는 점이다. 그 용기가 부럽다 못해 어느 날, 살짝 모자란 척, 며느리들 사이의 농담을 시어머니께 전했다. "솔직히 제사는 조상 덕 보려고 하는 거라는데 정작 조상 덕 보는 후손들은 제사 안 지내고 명절 때 여행 간대요 어머니~" 어색하게 올라간 어머니의 입꼬리를 보고서야 나는 ‘내가 괜한 시도를 했구나'싶었다.


다시 책으로 돌아가서 <음복>이 제목이 된 배경을 추측해 보자면, 이 소설은 제사를 지내고 난 뒤 음식을 나눠먹는 동안 가족들이 나누는 대화나 그 시간 혹은 그 장소에서 벌어지는 일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주인공의 관점에 과하게 몰입된 나는 이 작품을 읽은 직후, 소설 속 대사 "너는 아무것도 모를 거야." 이 문장을 남편에게 이해시키기 위해 힘주어 설명하느라 고군분투했다. 서점에서 나를 쳐다보고 있는 타인들의 시선조차 의식하지 못했다. 설명한다고 이해하겠느냐마는 그거라도 안 하면 울분이 가라앉지 않을 것 같은 본능적인 시도였다.

 

내가 남편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지만 언제나 내 맘 속에 머물러 있는 말, 그 말을 놀랍게도 강화길 작가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읊어주었다.

왜냐하면 너는 아마 영원히 모를 테니까.
무언가를 모르는 너.
누군가를 미워해 본 적도 없고, 미움받는다는 것을 알아챈 적도 없는 사람.
잘못을 바로 시인하고 미안하다고 말하는 사람 (중략)
그래, 그래서 나는 너를 사랑했다.
지금도 사랑한다.
때문에 말하지 않기로 했다.
사실 네가 진짜 악역이라는 것을.

소설을 읽는 내내 마음이 무겁고 가슴이 답답함도 모자라 언짢기까지 한, 그러나 남자들은 영원히 모를, 이런 상황에 한 번도 놓여 있지 않았던 운 좋은 여자들 역시 영원히 모를 이 감정이 나는 거북했다.

‘불러봤자 소용없는 외침'과도 같은 굴레다.

결론은 씁쓸하다.

문학은 자주 이러하다.

굳이 이 시점에 다시 한번 느끼지 않아도 될 거북한 감정들이 내 가슴에 옹기 종기 모여 앉는다. 뭐 좋은 자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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