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이끄는 힘, 독서!

낭송의 달인 호모 큐라스(고미숙)

달빛마리 2021. 1. 4.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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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큐라스/고미숙/북드라망

작년 봄에 읽었던 고미숙 선생님의 <읽고 쓴다는 것, 그 거룩함과 통쾌함에 대하여>를 연말에 다시 한번 읽게 되었다.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었던 책을 구입해서 다시 읽으면서 그 여운이 크게 남았던 터라 이어서 선생님이 쓰신 다른 책을 읽고 싶었다. 연휴 전에 도서관에서 여러 권을 빌려왔고 그중 첫 번째로 읽은 책이 바로 <낭송의 달인, 호모 큐라스>다. 

 

언어의 유희를 즐기시는 선생님은 책의 머리말에서부터 웃음을 주신다. 

  • 낭랑하게 낭송하라
  • 필사적으로 필사하라
  • 글로벌하게 글쓰기 하라
문득 '낭송집을 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소리가 들렸다. 응? 소리가 들렸다고? 그렇다! 그건 분명 소리였다. 생각이 아니라 소리. 생각은 머리에서 떠오르지만 소리는 가슴속에서, 더 정확히는 오장육부에서 솟아난다. 그래서 '하는' 것이 아니라 '들린다'.
매일매일 그렇게 솟아올랐다 사라지는 소리들이 얼마나 많은가. 산다는 건 그런 소리들의 파동 속을 헤쳐 나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떠올랐다가 사라지는 마음속 수많은 생각들 그리고 그 속에서 무심히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어떻게 이렇게 단 몇 문장으로 정확히 비유하실 수 있는지 감탄과 부러움의 두 감정이 교차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열하일기>에서 감동을 받았던 구절을 다시 만나 반갑기도 했고, 잊고 있었던 낭독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되새길 수 있어 감사한 시간이기도 했다. 특히나 내가 읽었던 선생님의 모든 책은 사람의 생을 망라한다는 점에서 정말 매력적이다. 한 권의 책을 읽었을 뿐인데 자식의 도리와 부모의 역할을 배우기도 하고, 글과 삶, 앎과 신체가 분리되지 않는다는 말씀을 하시며 공부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워 주시기도 한다.

 

요컨대, 자기의 삶을 고귀하게 하는 행위, 거기에는 외모도 스펙도 재능도 필요 없다. 그저 매일매일의 실천만 있으면 된다. 다시 말해 일상의 리듬이 자발성과 청빈으로 가득 차면 된다. 그러면 또 이렇게 반문할 것이다. 그렇게 해서 어느 세월에 삶이 바뀐단 말인가? 이 또한 한탕주의가 낳은 통념이다. 늘 한방에 도약하는 걸 꿈꾸다 보니 일상이 삶의 현장이라는 걸 망각한 것이다. 삶의 현장은 몸이고, 몸은 일상 속에서만 현존한다. 일상을 떠난 몸, 일상을 떠난 삶은 없다. 그리고 일상은 언제나 '오늘 하루' 속에서만 자신을 드러낸다. 일 년도, 인생도 결국 따지고 보면 하루의 연속이다. 태어나는 순간도 어느 하루였고, 생을 마감하는 순간도 어느 하루다. 오직 하루가 있을 뿐! 하지만 사람들은 이 하루를 참 우습게 여긴다. 항상 일 년, 삼 년, 십 년 단위로 생각하는 버릇이 있어서다. 그래서 늘 다음으로 미루고 지연시킨다. 

p.184

이 글은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무엇이든 늦깎이인 내 인생을 위로해 줌과 동시에 안일함만을 추구하지 않도록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글이었다.


 

선생님이 쓰신 책이 늘 그렇듯 한 가지의 일관된 주제 아래 시공간을 망라하는 대서사시가 펼쳐지니 선생님의 가락에 장단 맞춰 춤을 추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어둠의 시간 속에서 그리고 일체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 적막한 공간 속에서 텍스트를 마주하는 일이다. 

 

선생님이 이 책을 쓰시면서 참고한 책들 중 유독 내 시선이 오래 머무는 문장은 같은 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바로 한국 고대 문화사 연구를 하시는 서정록 작가님의 <잃어버린 지혜 듣기>였다. 주문을 하고 기다리는 마음이 참 설렌다. 

 

오랫동안 한쪽에 치우쳐진 독서 편향을 움직이게 해 주신 고미숙 선생님 덕분에 서서히 동양 철학과 동양 고전에 눈을 돌릴 수 있게 되었다. 늘 감사한 마음이 가득하다. 이어서 읽을 다음 책은 고미숙 선생님의 <몸과 인문학>이다. 난 또 어떤 여행을 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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