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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이끄는 힘, 독서!

호밀밭의 파수꾼(제롬.데이빗 샐린저)

by 달빛마리 2021. 3.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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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atcher in the RYE by J.D. Salinger 

 

 

호밀밭의 파수꾼/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10여 년 전쯤 영어공부를 할 목적으로 원서로 처음 접했다. 모르는 단어가 있어 찾아보면 대부분 욕설과 외설스런 표현들이 주를 이뤘던 기억이 있다. 이번에 지인들과 함께 읽을 기회가 있어 다시금 책을 펼쳤다. 이번에는 한글 번역본으로. (아무 생각 없이 도서관에 소장되어있는 번역본을 무심코 빌렸는데 블로그에서 정보를 찾아보니 우리나라에서 번역된 '호밀밭의 파수꾼'은 영미문학 번역 평가 사업단에서 모두 최악의 번역으로 선정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내가 빌린 번역서는 하필 그중에서도 worst of the worst였다 ^^;)

 

미국의 공립학교에서 오랫동안 금서로 지정했고 연쇄 살인범들이 그토록 사랑했던 책이라는 오명에도 불구하고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을까? 1998년 미국의 랜덤하우스 출판사가 선정한 20세기 영미 100대 소설이라는 타이틀의 영향이었을까? 

 

예술은 주관적인 영역이고 특히나 인간은 보이지 않는 모호한 대상에 많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에 귀에 걸면 귀고리,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의 흐름에 생각없이 편향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1951년에 발표된 작가의 체험을 소재로 쓴 자전적 소설로, 놀라운 것은 16세 소년 홀든 콜필드가 학교 기숙사를 이탈해 집으로 돌아가는 3일 동안, 생각하고 겪은 일들이 이 장편소설 내용의 전부를 차지한다는 사실이다. 

 

여러 학교에서 부적응하고 마지막 학교에서도 성적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퇴학을 앞 둔 홀든 콜필드는 기숙사 친구와 다투고 충동적으로 학교를 떠나 뉴욕 거리를 헤맨다. 호기심 많고 엉뚱한 그의 면모는 순수를 잃어버린 기성세대와 마찰만 일으키지만 그를 유일하게 이해해주고 믿어주는 여동생 피비를 통해 결국 삶의 방향을 다시금 가다듬게 된다는 내용이다. 

 

책을 읽기 전이라면 왜 제목이 <호밀밭의 파수꾼>인지 궁금한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로버트 번스의 <호밀밭 사이로 오고 있는>이라는 시에 곡을 붙인 노래 <If a body meet a body coming through the rye>를 <If a body catch a body coming through the rye>라고 오해 한 홀든 콜필드가 무엇이 되고 싶은지 말해보라는 피비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는 장면이 있다. 

 

"내가 '잡는다면'으로 잘못 알고 있었나 봐" 나는 말을 이었다. "그건 그렇다 치고, 나는 늘 넓은 호밀밭에서 꼬마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어. 어린애들만 수천 명이 있을 뿐 주위에 어른이라고는 나밖에 없는 거야. 그리고 난 아득한 절벽 옆에 서 있어.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주는 거야. 애들이란 앞뒤 생각 없이 마구 달리는 법이니까 말이야. 그럴 때 어딘가에서 내가 나타나서는 꼬마가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거지. 온종일 그 일만 하는 거야.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 바보 같은 얘기라는 건 알고 있어. 하지 마 정말 내가 되고 싶은 건 그거야.
바보 같겠지만 말이야. "
p.287-288

결국 혼란스러웠던 사춘기 소년 홀든 콜필드를 방황과 어둠의 시간속에서 밖으로 이끌어 주었던 파수꾼은 기성세대의 어른들이 아니라 순수성을 간직하고 있는 대상, 여동생 피비였다. 홀든 콜필드는 호밀밭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의 순수성을 바보 같은 어리석음으로 보지 않는 유일한 어른이고 싶었다. 

 

책을 읽는 동안 내내 무라카미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이 떠올랐다. 기숙사라는 물리적인 환경도 같고 방황하는 자아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이 왠지 모를 불편함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홀든 콜필드가 대학생이 된다면 와타나베의 모습과 흡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무라카미 하루키가 <노르웨이의 숲>을 쓰기 전에 일본에서 <호밀밭의 파수꾼>을 번역했으니 그의 작품에 전혀 영향을 끼치지 않았으리라는 법은 없겠다. 

 

이 책의 작가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가 평생 신비주의자나 은둔자일 수 있었던 이유는 의도된 계획일 수도 있지만 자신의 작품을 읽고 살인을 저지른 사람들이 하나씩 세상에 밝혀질 때 과연 작가로서 어떤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싶다. 

 

내 자신이 기성세대의 범주에 들어가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책에서 홀든 콜필드가 했던 말을 내 딸로부터 직접 들은 적이 있어 아주 뜨끔했다. 

어른들이란 자기네들 말이 절대 진리라고 한다.
나는 그들의 말을 전혀 개의치 않는다.
p.22-23

이 책의 말미에서 홀든 콜필드가 정신병원에서 지내고 있음이 밝혀질 때 불현듯 내 생각은 왜? 였다. 도대체 무슨 병에 걸렸다는 거지? 책에서는 내키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세하게 설명하기를 거부했다. 학교에 적응하지 못해 전학을 여러 번 하고 성적이 좋지 않아 퇴학을 당하고 거짓말을 일삼고 담배를 피우는 것만으로는 타당한 이유가 될 수 없었다. 

 

결국 병원을 나오면 다시 제도권안으로 들어갈 상황에 놓인 홀든 콜필드는 정신과 전문의가 다시 학교로 돌아가면 공부를 열심히 할 거냐고 묻자 바보 같은 질문으로 치부해 버린다. 이유가 통쾌하다. 물론 열심히 공부할 생각이지만 , 실제로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마지막까지 기성 세대들의 어리석은 질문에 비판을 가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봤다. 철학자 최진석 교수님은 꿈을 이야기할 때 가능과 불가능에 대해 논의할 필요는 없다고 하셨다. 가능할 것이라고 대답하는 것은 단지 계획일 뿐이기 때문이다. 

기성세대 중 누구라도 홀든 콜필드에게 '너는 어떤 꿈이 있니?'라고 물어봐 주었다면 어땠을까? 이 소설에서는 여동생 피비가 그 역할을 대신한다. 

그럼 뭘 좋아하는지 한 가지만 말해 봐
p.282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이 내린 저마다의 다양한 해석들이 몹시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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