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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위안(알랭 드 보통 지음, 정명진 옮김)

달빛마리 2021. 4. 22.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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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위 위안/알랭 드 보통/청미래

이 책은 알래 드 보통이 인류 역사상 가장 비범하다고 알려진 6명의 철학자의 생애와 생각을 정리한 것이다. 소크라테스, 에피쿠로스, 세네카, 몽테뉴, 쇼펜하우어, 니체가 그 주인공들이다. 

 

알랭 드 보통은 이 철학자들을 통해 철학의 본질과 목적이 무엇인가를 묻고 그 대답을 찾고자 했다고 전해진다. 

 

나는 단연 니체에 집중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 '헤르만 헤세'에게 영향을 준 철학자이면서 동시에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통해 나를 사로잡았던 인물이 아닌가. 

 

삶의 어느 순간 나는 '행복'이라는 개념이 '쾌락'처럼 느껴졌다. 인간이 맹목적으로 쫓기엔 너무나 동물적인 한 순간의 증발되는 감정처럼 여겨졌다. 행복만을 추구하는 사람이 얼마나 행복할지는 의문이다. 우리는 삶의 순간순간들을 사랑해야 한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이지만 고통과 불행은 나를 성장시키는 확실한 요인이 되기도 한다. 그 안에 너무 오랫동안 매몰되어 있지 않는 이상 스스로의 가치를 높이는데 훌륭한 비계가 될 수 있음은 확실하다. 그래서 이 모든 일련의 과정들을 '승화'의 징검다리로 만들어야 한다. 

 

다 건너가고 나서 승리의 축배를 드는 것이 아니라 한 걸음 한 걸음마다 스스로에게 자축의 인사를 건네야 한다. 

 

'니체'편에서 다음의 글을 만나 반가웠다.

모든 괴로운 상태를 반드시 제거해야 하는 것으로, 불만스러운 것으로 간주하는 것은 극히 어리석은 짓이다. 그 결과로 나타나는 것은 일반적인 의미에서 진정한 재앙이다. 나쁜 기후를 제거하겠다는 의지만큼이나 비슷하게 우둔한 것이다. (중략)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이라고 해서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우리를 아프게 하는 것들이라고 해서 다 나쁜 것은 아니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전혀 알지 못했던 니체의 개인적인 취향과 신념을 알게 되어 흥미로웠다. 니체는 유럽의 심각한 마취제 두 가지를 알코올과 기독교라고 주장했다. 

  니체의 설명에 따르면, 기독교는 로마 제국의 어리석은 노예들의 정신에서 비롯되었는데, 산의 정상에 오를 배짱이 부족했던 그들은 산기슭에 머물러 있어도 기쁘기만 하다는 철학을 스스로 만들어냈다.

기독교인들은 성취감을 실제로 불러일으키는 요소들 (세상의 지위, 섹스, 지적 정복, 창의성)을 즐기기를 원했지만, 그런 아름다운 것들이 요구하는 어려움을 극복할 용기가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위선적인 믿음을 짜내기에 이르렀다. 말하자면 자신들이 원하기는 하지만 싸움을 벌여가며 얻기에는 역부족인 대상들을 거부하는 한편, 그들이 굳이 원하지는 않았는데도 어쩌다 손에 넣게 된 것들을 찬양한다는 식이었다.

무력함은 "선함"이 되었고, 천박함은 "겸양"이 되었다. 자신이 혐오하는 사람에 대한 종속은 "순종"이 되었고, 니체의 표현을 빌리면 "복수할 수 없는 것"은 "용서"로 둔갑했다. 허약함을 나타내는 모든 감정은 신성한 이름으로 덧씌워져 "자발적인 성취, 무엇인가를 갈망함으로써 선택된 것, 하나의 행위, 하나의 성취"처럼 보이도록 만들었다. "위안의 종교"에 빠진 기독교도들은 그들의 가치체계에서 바람직한 것보다는 쉬운 것에 우선권을 둠으로써 그들의 삶의 잠재력을 모두 낭비해버렸다. 

버틀런드 러셀과 니체 그리고 최진석 교수님이 모여 이 글에 대한 토론을 벌이면 어떤 말들이 오고갈지 몹시 궁금해진다. 

올바른 일이 맞서는 일이 되어야 했던 그 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by 달빛마리 

 

삶의 궤적을 바꾼다는 것은 뭔가 특별하고 대단한 새로운 개념을 흡수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알고 있었던 것이 틀렸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받아들이는 유연함을 가지는 것 그리고 그 유연함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유에서 다른 유를 창조하는 일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깨닫고 있다. 

 

그래서 더 정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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