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이끄는 힘, 독서!

상관없는 거 아닌가?(장기하)

달빛마리 2021. 6. 23. 08:44
728x90
반응형
상관없는 거 아닌가?/장기하/ 문학동네

이 책의 존재는 희미하게나마 알고 있었지만 선뜻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었다. 도서관에서 장강명 작가의 소설을 찾고 있었는데 그의 소설들 옆에 나란히 꽂혀 있어서 눈에 띄었다. 표지가 강렬한 오렌지빛이어서 집어 들었던 것 같다.

아무런 기대도 없었고 오히려 일종의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책을 만지작거리며 읽을까 말까를 고민했다. '그래, 산문이잖아. 휘리릭 읽히겠지. 머리 좀 식히자'라는 마음으로 집에 가져왔다. 한달에 걸쳐 이윤기 작가의 그리스 로마 신화 합본 5권을 읽은 터라 이제는 그리스 로마신들이 존재하지 않는 현실 세계로 돌아와야 했다.

정말 오랜만에 재미있게 책을 읽었다. 내가 읽고싶은 책을 읽는 것이야 늘 내게 즐거운 일이지만 이 책은 조금 달랐다. 재미있었다. 한 장 한 장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아껴두며 읽고 싶을 정도로 즐거움과 아쉬움이 교차했다.

나는 아티스트에 대한 호불호가 확실한 편이다. 그러나 가수 장기하는 내게 중립의 위치에서 호감쪽으로 몇 발자국 향해있는 존재였다. 그가 만든 모든 곡을 들어본 것도 아니고 그에 대해 많은 것을 알지 못하지만 내가 아는 몇 가지 사실로 그를 호감의 위치에 올려놓았었다.

한국인 가수가 한국어 노래에 멋 부리는 영어 가사를 어설프게 넣지 않는다는 것, 다른 가수들과는 차별화되는 독특한 음악, 서정적이고 현실적인 가사, 척하거나 꾸미지 않는 그의 말투 그리고 쌍거풀없는 눈 등등

그러고 보니 책 제목도 딱 장기하답다 <상관없는 거 아닌가?> 그의 말투가 들리는 듯하다.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마음껏 자유롭게 살고 싶은 그의 마음이 나와 정확히 일치해서 놀라웠다.

행복 앞에 뾰족한 수가 없다는 점에서는 모두가 별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뾰족한 수는 없지만 나름대로 괜찮은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요 두 문장에서도 그의 단단한 내면이 느껴진다.

&lt;상관없는 거 아닌가?&gt; 목차

책은 낮과 밤이라는 큰 목차 아래 그가 쓴 짧은 산문들을 옹기종기 모아 놓았다. 이렇게 솔직 담백하게 글을 쓰면서 독자를 웃게 그리고 눈물짓게 만들 수 있는 그의 능력이 부러웠다.

국소성 이간증을 앓고 있는 장기하가 터득한 굵고 짧은 삶의 진리가 순간 내 시간을 정지시켰다.

형체 있는 것은 아무리 애써도 언젠가, 어디선가 사라져 없어지는 법이다. 그것이 사람이건, 물건이건.


일본 작가 이나가키 에미코의 <그리고 생활은 계속된다>라는 산문을 읽고 물건에 대한 욕심을 버리게 되었다고 전했다. 그에 관련된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있는데  웃음을 주는 포인트가 많았다.

그의 책을 읽으면서 오랜만에 비틀즈의 음악도 다시 들어보고 장기하의 곡들도 찾아서 들어 보았다. 장기하와 얼굴들 mono 앨범에 있는 '별거 아니라고'라는 제목의 노래가 특히 나를 사로잡았다. 남편과 아이를 챙겨야 하는 아침 시간에 듣기에는 왠지 부자연스러운 곡이지만 이 글을 쓰면서도 사실 이 음악을 듣고 있다.

<자유의 그늘>이라는 제목의 산문 말미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져 있다.

하지만 뭐랄까, 나는 삶이란 늘 아랫돌 빼서 윗돌 괴기라고 생각한다.
지금보다 더 자유로워지고 싶다면 더 외로워질 것도 각오해야 한다. (중략)
하지만 당신의 오늘 하루가 원하는 만큼 자유롭지 못했다고 해도, 바로 그 때문에 누렸던 무언가는 있을 것이다.

얼마나 삶을 초연하게 바라보면 가질 수 있는 태도일까? 그가 책의 곳곳에서 보여 준 삶의 태도는 자주 고개르 끄덕이게 만들었고 살아오면서 몸소 배운 내 삶의 교훈과도 일치해서 반가웠다.

그가 보았다는 배우 조셉 고든 레빗의 테드 강연도 찾아 볼 계획이다. 관심을 '끄는' 것보다 관심을 '기울이는'것이 창의성에 도움이 된다는 주제였는데 그의 말대로 의미심장하면서 재미있을 것 같다.

남을 위로하겠다는 큰 뜻을 품기보다, 내 마음 하나만이라도 잘 들여다보자는 목표를 세우고 산다는 그는 나 자신이라도 잘 위로해주자고 말한다. '앞으로 어떻게 살 거냐고' 자기 자신에게 묻는 일이 많다는 그의 담백한 표현이 어떤 수식어보다 와닿았다.

오랜만에 누군가에게 책을 마구마구 추천하고 싶을 때, 이 책을 꼭 이야기하고 싶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