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4주에 걸쳐 1542 페이지 분량의 안나 카레니나를 읽었다. 읽고 싶은 책 목록에 있었지만 책의 볼륨감 때문에 겁이 나서 나도 모르게 자꾸 미루던 책이라 더욱 의미가 있는 시간이었다.
분량을 나누어 매일 적당량을 읽으려고 노력했고 소설이라는 장르의 몰입도 때문에 계획한 것보다 더 빨리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뒤로 갈수록 후련함보다는 아쉬움이 남아 소설의 끝이 반갑지만은 않았다.
톨스토이가 쓴 단편집과 인생의 지침서 같은 종류의 책을 읽어보기는 했지만 이렇게 호흡이 긴 책을 읽은 것은 처음이었다. 책은 '안나 카레니나'를 읽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이미 익숙한 다음의 문장으로 1부를 시작한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 나름의 이유로 불행하다 (원 번역 수정)"
안나와 카레닌, 안나와 브론스키, 오블론스키와 돌리, 키티와 레빈 이들의 가정은 각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과 행복을 안고 산다. 이 작품을 단순히 안나의 불륜을 중심으로 펼쳐진 이야기일 거라고만 해석한다면 정말 많은 것을 놓치는 안타까움을 범할 수 있다.
우리는 이 책의 다양한 인물들을 통해 백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인간 본성의 법칙을 면밀히 이해할 수 있다. 완벽한 사랑을 꿈꿨던 안나, 그녀는 스스로 사랑이라는 믿었던 안타까운 망상(편집증)에 의해 지배당하는 인물이었다.
이 책을 읽고 '어떻게 블로그에 이 책의 깊이를 감히 담을 수 있을까?' 고민이 깊었다.
책을 읽으면서 톨스토이가 이 책을 쓸 당시, 러시아의 시대적 배경과 역사를 자연스럽게 알 수 있었고 동시에 파란만장한 톨스토이의 생애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 수 있었다. 작품 속 인물을 통해 자신의 사상과 신념을 여실히 드러냈던 톨스토이를 발견하는 시간도 즐거웠다.
솔직히 작품의 개연성을 위해서는 '안나의 죽음을 끝으로 7부에서 책을 끝냈어야 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톨스토이가 40대가 되면서 기독교에 회의적인 입장을 취하게 되고 철학에 몰두하면서 '선의 의미'를 깨닫는 과정을 작품 속 캐릭터 '레빈'에게 투영시키는 마지막 8부가 꽤 강렬했던 것은 사실이다.
냉담중인 내가 자연스럽게 철학에 몰두하고 나만의 답을 찾아나가는 과정 속에서 일어났던 수많은 생각들이 작품 속 레빈과 너무 비슷해서 깊이 공감할 수 있었고, 작품 속 수많은 인물들을 어느 누구 하나 완전한 선인 혹은 완전한 악인으로 만들지 않는 그의 능력에 깊이 감탄했다.
해설에 따르면 톨스토이는 한 가정 안의 사건을 통해 '행복의 문제'에 접근하고 있었지만 동시에 '가정의 불행'에 대한 현상학을 연구하는 것을 자신의 목표로 삼았다고 한다.
톨스토이는 보편적 복지의 달성은 오직 각 개인에게 열려 있는 선의 법칙을 각자가 엄격히 완수해낼 때에야 가능하다는 사실을 '레빈'을 통해 드러낸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삶 자체'가 신이었으며 인간 개개인의 마음속에 있는 도덕의 법칙이었기 때문이다.
8부 마지막 단락의 몇 줄은 그 당시 톨스토이가 깨달았던 삶의 순리를 조건 없이 우리에게 전달해 주는 것 같아 감사했다.
'여전히 내가 무엇 때문에 기도하는지 이성으로는 알지 못하면서 기도할 것이다. 그러나 이제야 내 삶은, 내 온 삶은 나에게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것을 초월하여 그 삶의 매 순간이 이전처럼 무의미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가 나의 삶에 부여하는 의심할 나위 없는 선의 의미를 지니게 되리라! '
책 속의 수많은 명언들을 일일히 다 옮기지 못해 아쉽고 꼭 많은 사람들이 한번쯤은 읽어보았으면 하는 마음이 가득하다. 모든 책이 그렇듯 다시 이 책을 읽게 되면 또 다른 깊이를 경험할 수 있을 것 같아 벌써 심장이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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