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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무라카미 하루키/임홍빈 옮김)

달빛마리 2021. 10. 31.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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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무라카미 하루키/문학사상

이 책의 제목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별도의 허락을 받고 Raymond Carver의 단편집 타이틀 <사랑에 대해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에서 가져와 완성되었다.

세계문학의 중심에 선 작가이지만 자신의 사생활을 작품에서조차 많이 드러내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무라카미 하루키는 회고록이나 자전적 소설을 쓸 생각이 전혀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독자들이 이 책을 유독 반가워했던 이유는 저자가 서문에서 그의 책을 "달리기라는 행위를 축으로 한 일종의 회고록"이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이 책은 '마라톤과 문학을 말하는 그의 회고록'이라고 할 수 있다.

각기 다른 여러 책을 통해 수없이 들었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 이야기'는 매번 읽을 때마다 흥미를 끌었다. 거의 매일 같은 시간에 잠자고 일어나 글을 쓰고 수영과 마라톤을 한다는 그의 이야기 말이다.

그의 책은 작가 스스로도 밝힌 그의 유일한 장점인 '집중력과 인내심'을 독자가 면밀히 관찰할 수 있도록 우리를 이끈다.
이 책은 '작가가 마라톤 연습을 매일 열심히 해서 그로 인해 참가하는 마라톤 대회마다 높은 성적을 거뒀다 그리고 끝' 이런 내용이 전혀 아니다.

대학 때부터 돈을 벌기 위해 작은 재즈 바를 운영했다는 이야기도 새로웠고, 프로야구를 보러 간 어느 날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잘 되던 가게를 접고 소설가가 되었다는 이야기, 소설에 몰두하면서 건강을 잃게 된 것을 계기로 마라톤을 시작했다는 이야기는 꽤나 흥미로웠다.

연습을 하면서 매번 힘들고 매번 지치고 가끔은 예기치 못한 일들로 기권을 하거나 저조한 성적을 거두기도 하고 마라톤에서 벗어나 울트라 마라톤과 트라이애슬론으로 확장된 그의 도전들 앞에서 그가 당시 어떤 생각을 했는지 기록으로 남겨두었던 것이 바탕이 되어 바로 이 책이 완성되었던 것이다.

책의 겉표지에 실린 작은 사진은 우리 가족이 3년 전에 한 달 동안 머물렀던 하와이, 그중에서도 와이키키 해변과는 대조적으로 고즈넉하고 한적한 해변이 꽤나 인상적이었던 알라모아나 공원에서 달리고 있는 작가의 뒷모습이다. 직접 가본 곳이라 괜히 반갑다. 사진을 보고 있자니 그날 우리 가족을 스쳐 지나갔던 조깅하던 사람들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윗옷을 벗고 더할 수 없는 가벼운 차림으로 각자 어딘가를 향해 뛰어가던 사람들...


다시 책으로 돌아가, 나에게 영감을 주고 감동케 했던 수많은 구절에 대해 나눠보자면, 서문의 제목으로 큼직하게 적혀 있는 '선택 사항으로서의 고통'은 수많은 자기 계발서에 적힌 '자극에 따른 다른 반응의 차이가 인생을 결정한다'는 똑같은 내용을 작가가 한 마라토너의 만트라를 소개하며 문학적으로 탈바꿈시켜 흥미로웠다. 작가는 다음의 문구가 마라톤이라는 경기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간결하게 요약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 Pain is inevitable,
Suffering is optional."

사실 이 문구는 나의 인생에서 내가 지표로 삼는 문구다. 불교에서도 이와 비슷한 개념이 존재한다. 우리가 느끼는 고통은 그 자체로 우리를 괴롭히지는 않는다. 엄밀히 말하면 그것은 스스로가 만들어내는 두려움, 스스로가 만들어내는 고통인 셈이다. 그래서 두 번째 화살을 맞지 말라는 표현도 있지 않은가.

이 책은 에세이지만 회고록인 만큼 작가의 생각이 분명하게 노출된다. 서문에서 작가는 '아무리 하찮은 일이라도 매일매일 계속하고 있으면, 거기에 뭔가 관조와 같은 것이 우러난다'며 그의 철학을 내비쳤다.

비슷한 맥락으로 '그런 여러 가지 흔해빠진 일들이 쌓여서 지금 여기에 있다'라는 말과 함께 소설에 관해 이야기할 땐 '계속하는 것- 리듬을 단절하지 않는 것. 장기적인 작업을 하는 데에는 그것이 중요하다'라고 밝혔다.

삶을 멀리 내다보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지혜일까? 마라톤을 하면서 어떻게 소설을 써야 하는지 배웠다는 그의 태도가 잘 베여있는 표현이라 여겨졌다.

아침 5시 전에 일어나 밤 10시 전에 자는 간소하면서도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있고 인생에는 아무래도 우선순위라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 인생은 기본적으로 불공평한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라는 내용을 읽을 때는 마치 내가 글을 쓰고 있는 것 같은 동질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마라톤 결승점을 골인하고 맥주를 마시면서 '현실의 맥주는 달리면서 절실하게 상상했던 맥주만큼 맛있지는 않다'라고 하면서 그가 적었던 다음의 문장은 요즘 읽고 있는 <돈키호테>가 떠올라 웃음이 났다.

제정신을 잃은 인간이 품는 환상만큼 아름다운 것은 현실 세계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p.103

같은 10년을 살아도 멍하게 사는 10년보다는 확실한 목적을 지니고 생동감 있게 사는 10년이 당연한 일이지만 훨씬 바람직하다며 작가는 달리는 것이 확실히 그러한 목적을 도와줄 거라는 그의 생각을 밝혔다.

주어진 개개인의 한계 속에서 조금이라도 효과적으로 자기를 연소시켜 가는 일, 그것이 달리기의 본질이며, 그것은 또 사는 것의 메타포이기도 한 것이다.
p.128

달리는 것에 대한 흥미가 떨어져 '러너스 블루'가 찾아왔을 때 그리고 이유도 없이 다시 사라졌을 때 작가는 정확한 이유와 경위를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그 상황을 다음처럼 설명했다.

그것이 아마 인생이 아닐까,라고.
우리는 아마 그것을 그저 있는 그대로 송두리째, 이유도 모른 채 그 어떤 경위에도 아랑곳없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라고.
세금이나 조수의 간만, 존 레넌의 죽음과 월드컵의 오심과 마찬가지로.

아.. 정말..
이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 나는 몇 번이고 흔들렸다. 삶의 방향을 잃어 이리저리 휘둘리는 흔들림이 아니라 영감과 감동과 깨달음이 혼합된 그런 흔들림이었다.

작가가 책의 마지막 장에 다음과 같은 묘비명과 함께 자신의 미래에 대해 언급하는 구절이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 (그리고 러너)
1940~20**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

나는 올겨울 세계의 어딘가에서 도 한 번 마라톤 풀코스 레이스를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내년 여름에는 또 어딘가에서 트라이애슬론 레이스에 도전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계절이 순환하고 해가 바뀌어간다. 나는 또 한 살을 먹고 아마도 또 하나의 소설을 써가게 될 것이다.
어쨌든 눈앞에 있는 과제를 붙잡고 힘을 다해서 그 일들을 하나하나 이루어 나간다.
한 발 한 발 보폭에 의식을 집중한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동시에 되도록 긴 범위로 만사를 생각하고, 되도록 멀리 풍경을 보자고 마음에 새겨둔다.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장거리 러너인 것이다.

다른 사람보다 매번 출발점이 느리지만 결국 하고 싶은 것은 꼭 해내고야 마는 나, 현재에 집중하지만 그 순간들이 차곡차곡 쌓여 내 미래를 결정한다는 강한 믿음이 있는 나, 그리고 무너질 때마다 책을 통해 다시 깨닫고 일어서는 내 모습이 그의 글에서 보였다.

자신의 책 후기에 작가가 쓴 글이 강하게 나를 사로잡는다. '자, 나는 지금 대체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책을 읽고 그 책 속에 무엇이 담겨있는지 또 나는 무엇을 느꼈는지 적는 기록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내가 지금 현재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기록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오늘 무엇을 했는지 단순 사실을 늘어놓는 일기가 아닌 오늘의 내가 어제의 나와 어떻게 다른지, 왜 다른지 그리고 어떻게 성장했는지 난 그 안에서 무엇을 느꼈는지를 기록하고 싶다.

몇몇 사람들이 왜 이 책을 인생 책이라고 일컫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각자에게 전해주는 메시지는 모두 다를 테지만 독자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인생을 관찰하는 동시에 각자 자신을 들여다보게 해주는 멋진 회고록임에는 틀림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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