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30대 중반이었을 때, 난 빨리 마흔이 되고 싶었다.
마흔이라는 나이는 세속의 모든 것에서 자유로워지는 나이라고 생각 아니 착각했다.
왜 그랬을까?
결혼도 했겠다. 아이도 있겠다. 이런 상황에서 더 이상 외모에 집착하지 않고 마음 근육을 단단히 하는 나이라 여겨졌고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하지 않고 타인을 의식하는 피곤한 삶에서 벗어날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살아보니 겉가죽만 늙어갈 뿐 정신은 오히려 미성숙하고 어리석은 그 상태로 또렷하게 머물러 있었다.
이제 와서는 이런 상태로 쉰 이라는 나이를 마주하는 게 너무 싫다.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나이, 건강하다면 누구나 지나쳐야 하는 나이, 누군가는 쉰을 반백년이라고 표현하던데 더욱 싫어지는 어감이다.
이 책은 내가 그토록 마주하기 싫은 '쉰'이라는 나이의 전후에 있는 사람들이 가장 공감하고 가장 오롯이 받아들일 수 있는 책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책을 읽으며 유독 내 마음에 와 닿았던 구절들을 공유해 본다.
- 내가 만난 시인들은 하나같이 다른 시인을 의식하지 않았다.
자신들이 그려나가고 있는 좌표에 충실할 뿐 다른 이들의 동선을 염탐하지 않더라는 것이다.
당연히 누구와 비교되는 것도 마뜩잖아했다.
그것은 부단히 자기 부정과 자기 갱신을 감행해 본 자들이 가 닿은 자유로움 같은 것으로 여겨졌다.
김도언 << 세속 도시의 시인들>>
- 피곤한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그 속으로 들어왔더니만, 과시와 엿보기와 모방과 찬양의 부채질에 휘둘리며
허파에 바람만 잔뜩 들어가버리고 마는 세계.
나도 모르게 어딘가 빠르게 소모되어버리는 듯한 느낌이 드는 곳.
(어디일까요? 바로 SNS 세상이지요.)
- 吾生也有涯 而知也無涯 '오생야우애 이지야무애'
우리 삶에는 끝이 있으나 앎에는 끝이 없다.
- 세월은 안으로만 새기고 생각은 여전히 푸르른 희망으로 가득 찬 사람.
그리하여 내년엔 더 울창해지는 사람. 그렇게 나이 들어가면 좋겠습니다.
-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조선의 문장가, 유한준>>
- '결심'이란, 살아온 나에 대한 부정이었고, 살아갈 날에 관한 긍정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살아온 날들을 반성하며 비장하게 결심할 때면, 살아갈 날들은 늘 밝게 빛나 보였습니다.
자주 결심했다는 것은 그 만큼 그 결심이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의미일 텐데,
한사코 나를 부정하느라 나를 힘들게 하고 타인들마저 힘들게 한 것 이지요.
- 누구에게나 지하실이 있다.
- 우리의 꿈은 명사가 아니라 형용사이어야 할 지 모릅니다.
우리는 누구나 '무엇인가'가 되고 싶어 합니다.
그 무엇은 명사겠지요. 의사,교사,공무원, 회사원... 그러나 예를 들어 존경스러운 교사는 평생토록 이루기 힘듭니다.
생의 목표는 그런 게 되어야 하지 않을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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